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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Feb 08. 2022

유독 힘든 이유는 내게 있다(+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화 세 통에 고혈압, PTSD

두려움과 불안이 자극된 날


  오늘 학교에서 세 통의 전화가 왔다. 뒷 골이 띵하다.

  복직을 위해 인수인계 날짜를 잡아보라는 한 통과 내년도 예산액을 배분하는 내용 두 통. 기존에 300만 원 편성받았던 것을 500만 원으로 늘리려 하셨으나 다른 선생님이 필요하시면 500만 원 이하여도 괜찮다 했고 다행히 300만 원으로 유지되었다. 돈이 더 들어오면 학생활동 등 사업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럼 공식, 비공식적 보고가 많아진다.

  

  어머니께 스트레스라 했더니 돈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냐 하신다. 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외부 강사도 부르고 물건도 사고, 돈도 크게 크게 써라. 그렇지만 그게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저 스트레스일 뿐이다. 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관리자의 감시, 의심으로 인해 숨 쉴틈이 없는 곳이다.


  외부 강사를 부르면 제일 먼저 들려오는 말은 '일하기 싫으냐? 왜 너의 능력으로 다 해내지 못하냐?'이다.  강사를 여러 명 부름으로서 같은 시간 동안 많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 설명해본다. 그렇게 겨우 외부강사를 부르면 강사들이 왔다 갈 때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어땠냐 참여한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각 학생의 만족도를 묻는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리 간섭이 많은가 물어도 보통은 프로그램이 진행하면 그 뒤로는 신경 안 쓴다 한다.


  물건을 사거나 돈을 크게 크게 쓰려하면 이 돈을 왜 꼭 써야 하는지 매번 설득해야 한다. 내가 왜 이 걸 사는지 이만큼 사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중 많은 것을 사지 못하게 쳐낸다. 이 역시 다른 교사에겐 그러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어야 하는 그 사람


  왜 유독 나에게만 이러는가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다. 내 업무가 아닌 큰 프로젝트를 갑자기 시켰을 때 내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조정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내가 큰 교무실에서 떨어져 있어 일을 대강할 거라는 오해였을까? 그 분의 분노를 들은 이후에 눈치 보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해서일까?

  해답은 다른 선생님들이 주셨다. 전 관리자에게 이쁨 받았던 탓이라고. 교무실 사람들은 이유를 모두 안다고.


  전 관리자 분들이 있을 때도 일은 한결같이 많았다. 다만 나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내가 하는 프로젝트를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많은 예산을 받아 많은 프로젝트를 했고, 교사들이나 학생들 만족도도 좋았다. 몸은 바빠도 뿌듯했다.

  그런 내 모습이 아마도 밉상이었나 보다. 그즈음 부장이셨던 그분은 관리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곤 했다. 그런데 3년 동안 나의 부장이셨던 교장선생님, 나를 딸처럼 예뻐했던 교감선생님은 나를 유독 감싸기도 했다. 교감선생님께서 내가 교감 자리에 다녀가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매번 물으셨지만 자신은 이야기하지 않노라고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자신의 또래교사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 나처럼 어린 교사에게는 그럴 수 없으니 무척이나 미웠을 것이다.



나에 대한 상이한 평가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나는 학생 때문에 휴직을 했는데 관리자로 인해 휴직을 했는가 생각해본다. 둘 중에 한 요인만 있었다면 난 분명 괜찮았을 거다. 나의 학생들은 힘든 아이들이었고,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목숨을 끊으려 한 그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죽지 않도록, 죽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적어질 수 있도록 돕는 일뿐이었다.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위험한 상황인 만큼 학교가 힘을 합쳐 함께 대처해야 하는 일이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관리자로부터 돌아온 말은 '담당교사 손을 떠난 일을 왜 그들과 의논하냐.'였다. 관리자 보고가 유일한 논의 창구였는데 그들은 가만히 앉아 반복된 확인만 지시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위기가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 교육청과 통화한 적도, 학부모나 학생과 통화한 적도 없다. 위기 상황 속에서 큰 책임감과 비난이 함께 오는 것은 굉장한 압도감이었다. 훌륭한 지도자들은 그 상황 속에서도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만큼 그릇도, 위치도 되지 못했다. 지도자는 관리자들이었고, 불필요한 걸 요구하면 쳐낼 정신조차 없었다. 이미 혼자 일을 대처하며 떠맡은 책임감과, 시킨 일을 하지 않으면 책임을 하지 못하는 거라는 비난과 함께 뒤엉켜 몸부림칠 뿐이었다.


  경찰에서 세 번째 출동했을 때 경찰서, 사회복지센터에서 내 이름은 이미 유명했다.(이전 글 참고. 휴직을 하게 된 이유) '이 동네 모든 학교에서 전화를 다 받지만 이런 선생님은 없다고, 매번 본인이 모든 곳에 연락 주시고 후속처리까지 하시는 분이라고...' 학교에서 근 몇 년 동안 나는 항상 일하기 싫은 사람, 능력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기에 하마터면 그 앞에서 울어버릴 뻔했다.

  휴직을 위해 인수인계를 하고자 정신건강의학과에 연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 많은 선생님들이 병원으로 아이들을 보내지만 아이들이 잘 다니고 있는지, 가정이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주기적으로 공유해서 치료에 도움되게 해주시는 분은 없다고. 훌륭한 선생님이라 했다.' 외부기관과 교내의 상이한 평가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 돌아가기 무서워요. 불안해요.라고 한다면 상담에서는 왜 내가 유독 이 상황에서 두렵고 불안한가를 탐색한다. 분명 어떤 이유는 있을 것이다.

  다만 상황이 너무 위험하고 극적이었던 지라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조차 알아내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다.

  외상 후 스트레스가 다소 있는 듯하다. 평상시에는 멀쩡하게 생활하지만 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 심장이 빨리 뛴다. 회사 등 학교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의 일이 금방 떠오른다.  진단기준에 의해 장애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조금 올려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오해가 조금 있는데.

1.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서 모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2. 자연재해, 대형 사고 등 누구나 공감할 큰 사건으로 인해 외상이 생기곤 하지만, 개인의 취약성에 따라서 그렇지 않은 일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을 수도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간 :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

증상 :

1. 재경험              

  - 사고에 대한 생각, 느낌, 감각이 재현.

  - 꿈에 나타나는 악몽과 깨어 있는 동안 경험되는 플래시백 있음.

  - 사건 자체와 관련이 있는 모든 자극들이 재경험 유발


2. 과각성 :  재경험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섬. 쉽게 피로함. 잘 놀람. 불면.


3. 회피              

  - 재경험을 유발하는 자극들을 피하기 위해서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자극으로부터 피하려는 경향

  - 회피가 지나칠 경우 불안감을 더 증폭시킬 수 있음.


4. 부정적 기분              

  - 사고 이후에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나 사회나 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신

  - 두려움, 죄책감, 불신, 피해의식   

  -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에 이러한 경향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함.         

                                                                                  [네이버 지식백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요약



유독 그 상황에서 힘든 이유는 내게 있다.


  교장은 교사들을 일을 못하는 사람,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 취급을 하며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하고, 거기에 저항하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자신에게 '모멸감'을 주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그분은 '인간은 채찍 속에서만 움직인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로 인해 그분은 네가 일을 하기 귀찮아하고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열심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또한 내 말을 안 들으면 너는 나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 전에도 항상 인정만 받았던 건 아니다. 때로는 열심히 일하는 날에도 한가하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고, 내가 일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기분 나빠한 동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직설적이고 지속적이긴 않았기에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어. 내가 내 자신을 인정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이 정도면 잘했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이토록 지속적이고 직설적이고 격렬하게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기에 아마도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고 말 일이, 나는 휴직까지 해야 했을까?


1. 내적 요인 :  '스스로 이 정도면 잘했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때로는 좀 더 중요한 일을 위해 그렇지 않은 일을 적당히 할 필요도 있다. 스스로의 기준이 높았던 상황에서 나를 극단적으로 저평가하는 말들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높은 기준에 압도된 감정이 합쳐져 나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내적 요인 : 감정에 휘말려 적절한 도움을 요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전 경찰 출동 때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하기도 했었다. 그때도 동료 교사들의 도움은 크게 없었지만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에 든든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사건과 비난에 감정에 휘말려 예전과 같은 대처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3. 외적 요인 : 상황이 워낙 급박하고 다양했다.

  이전에는 경찰을 출동시킬 정도의 일은 딱 한 번이었다. 자살충동처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후속 수습만 하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한 달도 안 되는 상황에 세 번의 출동이 있었고 그중 자살 충동이 2건. 지속적인 자살충돌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외상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복직 후 계획


1. 외상 후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상황에 부딪히기.

  가장 힘들 때 학교로부터 떠나왔기에 나의 기억은 아직 그때에 멈춰있다. 소식을 듣자 하니 내가 휴직한 이후로 경찰을 출동시킬만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돌아가서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가 확인되면 나의 불안이 조금 잠재워지지 않을까 싶다. 너무 '괜찮아' 하지 않지 않으면서 불안을 견뎌내고 싶다.

  또한 관리자들도 이제 복직한 사람에게 예전처럼 굴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 또한 가서 확인해보아야 안심할 것 같다.


2. 높은 기준 내려놓기

  교내에서도 나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다. 다만 부정적인 평가가 강렬했고 그게 나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사람, 관리자였다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의 평가는 중요치 않다면서 스스로의 평가는 너무 높지 않았나 검토해보아야겠다.


3. 혼자 일하려 하지 않기

    동료 교사나 관리자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예전처럼 외부센터에 도움을 요청해보려 한다. 그 외에도 이번 일을 통해 필요한 계획을 미리 함께 세우고, 일이 생겼을 때 부가적으로 불필요한 일을 받지 않다로 고 해야겠다. 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우려면 이번 일에 대한 평가도 조금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평가하다가 또 소리를 지르실까 조금 걱정이 된다ㅠ)


4. 소리를 지르면 그 자리를 피한다.

  소리를 못 지르게 하거나,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최대한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관리자라는 이유로, 자리를 뜨면 더 미움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나를 지키고 싶다. 이미 많은 괴롭힘을 당했기에 자리를 뜬다고 해서 더 한 게 있을까 싶다.



  복직이 다가올수록  학교에 대한 생각이 점차 많아지고 불안해진다. 나의 불안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써야겠다.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위험에 대처하게 한다. 불안을 안고 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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