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장 Feb 12. 2022

[독서치료] 불안한 사람들

불안을 느껴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다독이는 것.



  심리학에서 감정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한다. 행복, 만족, 즐거움, 사랑은 단어 그대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분노, 슬픔, 공포, 불안 등은 관계를 망치거나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역할 같이 보인다.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다.

  분노는 자기주장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슬픔은 자신을 위로하는 역할을, 공포는 위협으로부터 도망가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안 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은 위험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거나 피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한 불안, 즉 어떤 일을 수행할 때의 불안은 수행을 빠르고 잘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불안은 과거에 내가 잘 느끼지 못했다가, 금은 너무 많이 느끼는, 어려운 감정이다. 잘 겪어보지 못했기에 나는 대처방법을 몰랐다. 나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견뎌낼 수 없는 불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고, 내 자신이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에 이르러야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안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몰랐는데, 친구가 선물해준 책 [불안한 사람들]을 읽으며 그 보편성을 찾았다.



  한 등장인물, 사라의 심리상담사는 말한다.


  "그거 알아요, 사라? 불안의 가장 인간적인 측면이 뭔가 하면, 우리가 혼돈을 혼돈으로 치료하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파국적인 상황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거기서 철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다들 전보다 더 빠르게 계속 달리려는 성향을 훨씬 많이 보여요. 남들이 벽에 부딪히는 걸 보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벽을 무사히 관통할 수 있길 기대해요. 그 벽에 가까워질수록 믿기지 않는 해결책이 기적적으로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확신이 점점 커지지만 그동안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충돌을 기다리고 있죠."

[불안한 사람들, p296]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그래서 내가 그런 과정을 겪었구나 싶다. 내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까, 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그 당시 거절당했지만 어떻게든 다시 강력히 요청했을 수도 있다.) 하고 탓하기도 했었다. 내 탓하는 게 괴로워지니 남 탓도 심하게 했다.

  아마도 불안의 부작용을 겪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이 상황은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만큼은 이겨내고 대처하라 기대했다. 내 자신이 지쳤다는 걸 알면서도 더 바쁘게 움직였다. 자살 행동 직전까지 갔던 아이들이 끊임없이 자살 사인을 보내는 가운데 내가 더 빠르게 달리면 그들의 고통이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 사건 안에서의 내 행동을 잘 이해할 수도, 내 감정을 잘 알지도 못했다. 왜 무너지는 일까지 일어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란다. 너무 힘들었겠다고,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을 일들을 겪은 것 같다고. 그 상황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한 건 너무 잘한 거고, 너의 성실함 덕에 아이들이 살아난 거라고.

  [불안한 사람들]에서는 파국적인 상황에 닥치면 사람은 자신을 몰아붙이고 벽에 부딪힐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너의 모든 과정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말이다.

  결국은 불안 그 자체보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 괴로움인 거였다. 납득이 안 되니 자꾸 이유를 찾아 헤맸다.


  나는 스스로가 자꾸만 석연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왜 학생들, 직장을 버리고 도망쳐왔냐고. 정신과까지 갈 일은 아니지 않냐고. 소화시키지도 못할 일을 책임감 때문에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고. 멀쩡히 생활하고 있는 지금,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건 아니냐고.


  내게 필요한 말들은 이제 그 일은 끝났으니 얼른 이겨내, 자꾸 영향받지 말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 마음의 소리들은 나를 자꾸 불안 속에 묶어두었다. 아직 이겨내지 못했으면 어떡하냐는 불안...

  내게 필요한 말은 이제 불안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다독이는 말이다.


  '괜찮아. 많이 힘들어해도 돼. 네가 한 행동은 충격에 휩싸여 이상한 행동을 한 게 아니야. 사람은 보통 그런 상황 속에서 너와 같이 행동하고 느껴. 네가 느끼는 걸 믿어. 그게 진짜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너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시킬 필요 없어. 그들의 말대로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할 걸 겪었으니까. 내가 느끼는 것 그대로 지나가면 돼. 불안을 느껴내고, 그럴 수 있다 인정하는 게 흘려보내는 방법이야. 힘들었지? 힘들었을 거야. 괜찮아, 더 많이 힘들었어도 돼.'


매거진의 이전글 유독 힘든 이유는 내게 있다(+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