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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Feb 15. 2022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

  개학이 다가올수록 학교에서 연락이 자주 온다. 3월부터 복직이니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마음은 조금 힘들다.

  다른 선생님들은 1~2월 중간에 개학을 해서 1주일 간 출근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휴직 중이었기에 새 학기 준비기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2월에 출근하여 해야 할 일을 전달받으니 무척이나 난감하다. 일은 언제까지 끝마쳐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아무런 전달이 없다. 이걸로 발표를 해야 하는 건지, 한다면 언제 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슬그머니 불안이 올라온다.

(*학교 공문에 따르면 복직 예정자를 2월 신학기 준비기간에 일괄적으로 출근시키는 것을 자제하라고 한다. 출근이 꼭 필요할 때 부분적으로 출근하는 것을 권장하는듯하다. 우리 학교는 일괄 출근을 통보했다.)


  예전 같으면 이 상황을 어차피 할 일, 빨리 하고 치우자 라는 생각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난 일을 시키면 바로 수행하는, 성실한 동료였을 것이다. 갑자기 일을 시켰다는 것에 대한 불만도 없이, 특별한 틀을 주지 않아도 재깍 해내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쳤을까? 칭찬보다는 비판이 많은 직장이라 어떤 날은 비판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때도 있었다.


  한 선생님이 토로했던 게 생각난다.

'예전에는 반에서 일이 터지면 애들은 괜찮은가, 어떻게 일을 해결해야 하나를 먼저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혼내면 어떡하나 남들 눈부터 신경 쓰여서 긴장되고 압박감이 심해요.'


  나도 이런 마음이 드니 얼른 해결해 끝난 일이 되어야 내 마음도 조금 편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엔 복직한 사람이 일을 하진 않았었던 것 같다. 받은 일 급한 일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일 시키기 좋은 만만한 사람인가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갑작스레 자료부터 내놓으라니. 급하게 준비하여 아침 일찍부터 파일을 보내니 이 자료로 발표를 하라 하신다.

  친구에게 이 상황을 토로하니,

"어젯밤에 시킨 일인데 왜 아침부터 연락을 했어! 너무 적극적이고 성실해 보이잖아. 준비하는데 오래 걸려?"

한다.


  언제부터 성실한 게 문제가 되었던가...

  그렇지만 기한도 없이 날아온 일이기에 그리 빨라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내 불안은 나를 자꾸만 재촉하여 원하지도 성실함을 보인 것이다.



  사실 내 마음은 이랬다.

  관계적으로는 다른 부서의 일을 내 부장님을 통해 한 다리 건너 밤늦게 전달된 상황에, 나는 더 늦게 답장한지라 꼬치꼬치 캐묻기 미안했다. 그쪽에서 급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무척 빨리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급했다. 일을 시킨 선생님, 일을 전달한 선생님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좋아하는 분들이라 그분들의 조급한 마음을 얼른 가라앉히고 싶었다.

  업무적으로는 1시간도 안되어 끝났지만 '일을 한다.'라는 것보다 '이제 복직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켰다. 그것도 2월에.'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보낼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추가적인 업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얼른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관계적 불편함과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초초함에 새벽 4시에 잠이 깼고 이 불안을 얼른 끝내고픈 마음에 아침부터 자료를 보내고 추가 업무를 확인했다.


  성실할 의도가 없었는데 무척 성실해 보였을 것 같다. 여러 선생님들 중에 내가 1등으로 제출했지 싶다. 그런 사람에게는 일을 시키면 금방 네!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급함과 성실함을 혼동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급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가 급해하는 것에 휘말리는 것 같다. 유독 분노가 떨쳐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 같다.


1. 이제 복직하는 사람 일 많이 안 시키겠지 기대했다. 외부에 기대를 하면 타인과 상황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나 스스로 일을 조절할 생각은 안 하고 알아서 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기보다 내가 나를 지키는 힘이 더 강해져야겠다 생각해본다.


2. 성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초조함에 일을 했다. 속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여기면서 에너지를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했어도 되는 일을 가만히 놔두지 못한 건 나다. 덜 중요한 일에는 타인의 요구나 상황에 영향받지 말고 나의 방식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개학도 하지 않은 시점, 벌써부터 스트레스받는 나를 보며 개학 후가 걱정이 된다.  막상 상황에 닥치니 머릿속에서 정리했던 것들이 뒤죽박죽 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래 왔다. 아무리 혼자 되뇌고 결심을 해봐도 내가 정말 그 일을 극복해내고 변화하는 건 상황 안에서 대처할 때였다. '벌써부터 스트레스'라는 생각보다는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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