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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Mar 07. 2022

제게 소리 지르지 마세요.

나를 지켜내는 정당한 주장(+스탠리 밀그램, 권위 심리실험)

  개학 3일 차였던 지난 금요일.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이르게 내게 갈등 상황이 닥쳤다.


  퇴근하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첫 목소리부터 날카롭다. 내가 올린 기안을 확인하고, 위원회 구성에 관리자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허락받지 않았다는 이유다. 올해 처음 생긴 위원회가 아닌 몇 년간 지속된 위원회이다. 바뀐 구성원 교사에게는 구두로 허락을 받지만 당연직인 관리자는 특별히 허락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와중에 그녀의 날카로운 소리는 이내 하이톤의 꺅꺅대는 비명처럼 들린다. 그 비명에 대답을 하지 않자 '교장실로 올라오세요.' 한다. 나는 위원회 목록을 가지고 올라가 이 위원회 중에 하나라도 먼저 허락을 받은 위원회가 있는지를 묻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이번에는 오타 하나를 지적하며 소리를 지른다.



  복직을 하기까지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리를 피해버리자가 내 결론이었다. 언성 높인 목소리를 배경음으로 지금 나가면 좋을까 생각해본다.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저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하고 말한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지만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제가 잘못했어도 소리를 지르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내게 화난 게 아니라 일이 잘 되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한다.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건 정당화될 수 없어요.'

  그녀는 그 이후로 소리 지르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나는 칼을 든 강도를 만난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렇게 나를 지키고 나니 어느 순간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성격이 나쁘다는 둥, 나를 싫어하냐는 둥, 별 것도 아닌 걸로 왜 화를 내냐는 둥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말은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는,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잘못을 집어내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고함을 들을 의무는 없다. 상대도 소리 지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고함쳐도 되는 사람으로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권위를 가진 인물에게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권한을 쉽게 준다. 주변 사람들이 동조할수록 더욱 권한을 절대적인 걸로 여기게 된다.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점점 더해가는 공격성을 수용하게 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다룬 시험이 하나 있다.(링크. 네이버 지식백과)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1961년 미국 예일대에서 사회심리학 실험을 한다. 참가자는 문제를 내고 답변자가 틀릴 때마다 점점 더 큰 전기충격을 준다. 답변자는 일부러 문제를 틀리게 되며 사실은 전기충격을 받는 연기를 한다. 그걸 모르는 참가자는 고통스러워하는 답변자를 보게 된다. 참가자가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는 것을 망설일 때마다 옆에 서있는 실험자는 버튼을 누를 것을 명령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65%의 참가자가 450 볼트의 전기충격을 가했다. 실험자는 협박이나 설득도 하지 않았고, 단지 '계속하십시오.'. '실험은 진행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참가자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실험을 그만둘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꼭 복종해야 할 대상이 아닌 실험자의 명령에 따른다. 잘못된 명령이라도 책임자가 명령하는 이상 따르지 않는 것보다 따르는 것이 낫다는 인식 때문이다. 답변자의 건강을 실험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마음, 참가하기로 약속한 것을 깨야하는 본인의 책임이 더해져 권위에 대한 복종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상되듯이 참가자들은 실험 후에 잘못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학문적으로는 파격적인 실험이었지만 참가자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바람에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꼽힌다.



  내가 휴직하면서 얻는 건 익숙한 것을 끊는 거였던 것 같다. 소리를 지르는 권위자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 내가 이걸 멈출 수 있다는 자유의지.

  돌아온 학교에는 권위에 익숙해져 있는 교사들이 보인다. 나름대로 투쟁했던 사람들도 이제 다들 조용하다. 관리자들이 아무리 그들을 바보 취급해도 속으로만 분노하고 뒤로 욕한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하고 싸웠다 하니 어떤 선생님들은 그 방법이 있는 걸 알면서도 못 했다 하며 본인을 자책하기도 하시고, '어휴'하며 헛웃음을 짓기도 하신다. 지식인들이 모인 학교라는 집단에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심리적으로 이상한 일이기도 당연한 일이이고 한 거다.

  그래도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키자 다시 다짐해본다. 두려울 게 없다 생각해본다.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도 아닌데, 아마도 계속된 비난과 바보 취급하는 권위에 내가 못난 사람이 되어 사회적인 죽음을 맞이할까 걱정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암묵적으로 동의된 일을 동의받지 않은 것, 오타 하나가 나를 바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의 화를 받아내고 삭혀내느라 알아채지 못했던 사실을 휴직과 대응을 통해 이제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과거에 하지 못했던 대처를 하며 바보 취급을 인정해버린 내 마음을 달래 보려 한다.

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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