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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Mar 18. 2022

멍청이 취급을 받으니 드디어 멍청이가 되었다.

피해의식, 가스라이팅

  요즘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들었다. 진실을 흐리고 가 틀렸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여 자신의 말을 듣게 하는 게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단다. 내가 당한 게 가스라이팅인가 생각해본다.



  작년 5월쯤 나는 7분 지각을 했고 교장선생님그걸 알고 전화를 해서 지각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교장은 교감을 시켜 방학 한 달을 제외하고 9월까지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얼마 간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답답해서 물었다.


- "교감선생님 본 교무실 선생님이 늦어도 이렇게 하시나요?"

"본 교무실은 출근하는지 보이잖아요. 선생님은 교무실이 멀어서 교장선생님께서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자주 늦어서 그런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늦는지 자리에 찾아가고 전화로 확인도 할 거예요"

 - "저번 한 번 늦긴 했는데 전 자주 안 늦는데요. 일 이년에 한 번 늦을까 말까 해요."

"다른 선생님들 말로는 선생님 자주 늦는다던데?"

 - "어느 선생님이 그러시던가요? 늦는지는 제가 더 잘 아는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그 선생님 이름을 얘기하면 그 사람이 난처해지지. 선생님이 자주 늦는다고 얘기 들었어요."

 - "교감선생님이 직접 보신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선생님이 제시간에 출근하는 걸 제가 본 것도 아니잖아요?"

 - "전 정말 일 이년에 한 번 늦어요. 교문 들어오면서 운동장 시계를 항상 확인하는 걸요."

"선생님 그거 알아요? 운동장 시계 두 개 중에 하나는 느려요. 그래서 늦은 지 몰랐을 거예요."


  이쯤 되자 내 기억이 틀렸나 생각해본다. 학교에 도착해서 노트북 컴퓨터 시간을 항상 확인하곤 했는데 나는 잘 늦지 않는다. 내가 틀렸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늦는 걸 봤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늦었나? 며칠 뒤에 운동장을 지나다 시계를 봤다. 두 개중 하나는 제시각을 가리키고, 하나는 시간이 빠르다. 교감선생님이 틀렸다. 며칠 전 이야기를 따지기도 머쓱하다.


  나는 자주 늦는 사람이 되었고 그 뒤로 교감은 나를 찾아오거나 출근 확인 전화를 했다. 처음엔 교장 때문에 먼 곳까지 확인하러 오시는 교감선생님께 죄송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횟수가 잦아지고, 나중에는 발열체크도 8시 30분 전까지 해놓으라 야단이었다. 단 한 번의 지각으로 이렇게까지 간섭을 받아야 하나 싶었지만 내가 신경을 끄면 그만이라 생각했고, 한편으론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들 시선에 나는 매일 출근 확인을 하지 않으면 또 늦을 수 있는 상습적인 지각생이었다. 감시하고 타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삐뚤어져 나갈 사람 취급을 받는 느낌이다.



  내가 그리 불량한 교사였던가? 내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멍청이 취급을 받더니 멍청이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성과급 등급이 나왔고 B였다.(S,A,B 중 최하등급) 우리 학교 성과급 기준엔

비교과는 연속해서 최하등급을 받지 않는다.

라는 조항이 있다. 비교과는 여러모로 점수에서 차별을 받기 때문에 작년에 B를 받았으면 올해는 A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휴직을 했기에 이번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나 작년에도 B, 올해도 B인 것에 대해서 알리고는 넘어가고 싶었다.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자마다 돌아온 대답은 "나는 이 문구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어요.' 란다. B가 나왔으니 받으라 한다.

 

  여기서부터 매년 실랑이가 시작된다. 조항이 있지만 단 한 번도 조항의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한 번은 이제는 퇴직하신 보건교사가 A를 받았다는 이유로, 한 번은 이미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번은 미리 얘기했으나 내 점수가 낮아 다른 선생님들이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그 외 매번 이유가 바뀌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ㅠ)


  한참 실랑이를 하다 그 조항의 의미를 묻기 위해 작년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선생님 작년엔 A 받지 않았어요? 한다. 아니라고 기억해서 아니라고 했다. 그치만 파일을 확인한 결과 나는 작년에 A를 받았다. 그제야 생각이 난다. 점수가 낮아 다른 선생님들이 인정하지 않을 거라며 A등급으로 올려주는 걸 거절당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런 과정 없이 내 점수는 A였다. 순간 낯이 뜨거워진다. 잘못 기억하고 있었구나. A로 올려주면 다른 선생님들이 날 안 좋게 볼 거다. 인정하지 않을 거다. 하며 거절당한 기억만 있어 결과를 다르게 기억한 거다.


  전 교감, 현 교감선생님께 잘못 기억했다 죄송하다 하고 내려오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머쓱해하고 죄송해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었지만 왠지 대단히 잘못한 느낌이다. 멍청이 취급을 받다 보니 드디어 멍청이가 된 느낌이다. 비교과가 매번 B를 받다니 부당하다고 동조해주지만, 그러니 올해 A를 받을게요.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한다.


  사회생활을 잘못했나 생각도 해본다. 내가 사람들과 좀 더 가깝게 지냈으면 내 편을 들어줬을까? 내 일을 좀 더 티 냈어야 했나? 외부 상담사나 여러 학교를 가 본 기간제 교사들은 우리 학교 상담교사의 역할이 유독 크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말이 전부 겉치레였을까? 아니면 내가 일 많이 하는 걸 알면서도 내가 내 것만 챙기는 모습만 보여서 사람들은 내가 미운 걸까? 그럼 내게 호의적인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를 미워하면서 겉으로만 내게 상냥한 걸까? 내가 잘못 뿌린 것들이 내게 돌아오는 걸까?



  어려서부터 집단생활을 좋아했다. 좋아한 이유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았고 얼마 뒤엔 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곤 했다. 내가 무엇을 하자 하면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무얼 하나 결정할 때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괜찮은 결정을 내렸다. 내가 이 집단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았다.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난 단체생활을 잘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난 이제 혼란이 온다. 직장은 학생일 때나 취미 생활할 때랑은 다를 것이다. 좀 더 가차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생각엔 거의 모든 선생님들께 호의적이었고 열심히 일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그 전부터도 괜찮은 사람, 괜찮은 교사라 생각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욱 그렇다고 하셨다. 내가 휴직할 때 다른 선생님은 나 같은 참 교사가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했다.


  그런 좋은 말들을 마음에 새기며 그래도 일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동안의 사회생활이 헛되지 않았다 믿었다. 나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날 좋게 평가할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반복적으로 들이닥치며 나는 이제 견딜 힘이 없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못된 행동이 되는 것 같다.  



  한 번의 7분 지각 후 나는 달을 감시당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 물어도 이 정도 처벌은 타당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한 번의 실수로 과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해지니 그 뒤로 성과급과 관련된 실수를 하고 나니 크나큰 잘못을 한 느낌이다.

  이게 가스 라이팅인 것 같다. 네가 잘못했으니 어떤 처벌에도 저항할 수 없어. 내 맘대로 너를 처벌해도 돼 라는 메시지...


  지금 우리 학교는 단 하나의 실수, 단 하나의 오타도 없게 온 교사가 긴장하고 있다. 어떤 날은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언제 어느 교사의 실수에 과도한 처벌이 내려질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누군가 처벌을 받게 되는 날엔 몇몇 선생님들은  '그래, 그 선생님이 실수를 안 하진 않았지.' 하며 처벌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모두가 적응해 버린 거다.


  나는 오늘 그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래 내가 기억을 잘못했잖아. 그러고 교감한테 주장하면 어떡해. 큰 잘못 했네." 적어도 나는 내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나는 내게 조금은 잘못했지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얘기해줬어야 했다.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태도에 물들지 않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일과의 반을 보내는 이 직장에서 이 문화에 저항하여 물들지 않기를 몸부림치는 것에 지쳤다. 그냥 멍청이가 되어버리는 편이 속이 편할 것 같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 인정해버리고 굳이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게 편할 것 같다. 복직 한 달도 되지 않아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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