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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Feb 05. 2022

휴직을 하게 된 이유

적응장애, 번아웃 증후군

휴직을 한지는 6개월 복직까지는 3주 조금 넘게 남았다.

휴직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할 때는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 질병휴직을 신청했을 때 바로 대체자가 구해지지 않았기에 나는 그로부터 3주 정도 더 일을 해야 했다. 휴직을 기다리며 쓴 글이 있다.



내가 지금 어떤 걸 느끼냐면

몸에 불이 붙어서 물가로 달려가는데

어디 가니 일해야지 해서 붙잡힌 거야


내 몸을 태워가며 일을 한 거지

그래도 다 태우고 재라도 남으면

그거 모아서 나중에 어떻게든 복구가 되겠지 싶었어

근데 계속 일하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재로 문대고 치대서 다 딸려 보내고

아무것도 안 남은 느낌이야

일에 동료에 학생에 학부모에게 다 묻혀 보내고 나니

나의 존재 자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느낌

너무 바빴으니까....


내가 사라지고 있는 것조차 느낄 틈도 없었어



  특별히 두려운 거 없이, 강하게 불안함을 느낀 적 없이 살아온 나였다. 하지만 휴직 직전 내가 느낀 불안은 현실적 불안에서 비롯되어 말도 안 되는 예기불안을 느꼈었다. (불안에 대한 정의. 이전 글 참고)


  한 달 여동 안 죽겠다는 학생들이 둘, 아동학대 1건, 경찰을 출동시키고 그 뒤에 후속 대처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관리자, 담당교사, 학년부장 등 함께 해줄 법한 교사들은 나 몰라라 하거나 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 묻곤 했다. 심지어 관리자는 경찰, 병원, 센터, 학부모, 학생 등에게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확인을 요구해 업무는 날로 늘어갔다. 자살소동을 벌인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살 사인을 보냈고 출근 전, 퇴근 후 할 거 없이 불안에 떨며 대처해야 했다. 함께 대처하는 것이 아닌, 혼자 대처해나가는 분위기 속에 학부모들도 별 일 아니라 치부했고, 내가 대처하지 않으면,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리면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그 와중에 관리자가 요구한 일을 하나라도 빠뜨릴 때면 정신 차리라며 소리를 질러대고 더 많은 확인을 요구해 숨 쉴 구멍조차 없었다. 관리자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그 일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왜 빠뜨렸냐, 네가 책임질 거냐.'는 말에 나는 대응하지 못하고 침묵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데 갑작스러운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출근하다 정신을 놓고 다른 곳에 가버리면 어떡하지?', '출근하는 중간에 쓰러져서 내가 죽어버리면 어쩌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예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예상이 정말 현실로 느껴졌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너무도 도망가고 싶지만, 내가 도망가면 학생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로 발목 잡혔기에 할 수 있는 상상이었던 것 같다.

  일에 대처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땐 멀쩡하게 굴다가 틈만 나면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증상을 정신과에서는 적응장애라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 신체 질환, 또는 대인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후에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적 증상이나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 적응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증상은 보통 스트레스 후 3개월 이내에 발생하며, 스트레스가 사라진 후 6개월 이내에 증상도 소실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응장애 [adjustment disorder]



  단순히 말해 번아웃이라고도 한다. 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대충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대체자가 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휴직을 하게 되었다. 이 일로 나는 두 달 동안 6kg이 빠지고 그 이후로도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적응장애를 견디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로 우울증을 얻게 된다고 한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 상황으로부터 멀어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되지만, 우울증은 상황과 상관없이 재발, 치료를 반복해야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면 부딪혀보는 것도 좋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고 감정적 문제가 생긴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멀어지는 것을 추천한다. 몸도 마음도 버릴 수 있다.


  적응장애의 정의에서 말해주듯 4~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젠 괜찮다, 직장으로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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