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호감을 갖게 된다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호감을 갖게 된다 한다. 그걸 유사성과 상보성이라 부른다. 호감을 갖기에 두 개 다 필요할 것이지만 내게는 상보성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두 딸 중 막내로 자란 나는 까다로운 언니가 있다. 그녀의 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순한 기질로 태어났던 나는 자연스레 상대에게 맞추는 성격이 되었다. 지금은 언니는 상대에게 맞추는 쪽으로 나는 주장하는 쪽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성향이란 변화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 맞추는 게 습관이었기에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감정이나 욕구나 늦게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주장할 적당한 때를 놓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차분하게, 찔끔 털어놓는 거였다.
이런 성격이어서 그럴까 나의 단짝 둘은 감정이 생생한 친구들이었다.상황에 부딪혔을 때 즉각적으로 기쁨과 슬픔, 그리고 화를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원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없는 나는 그들의 생생함이 즐겁고 귀여웠다. 그들의 표현을 통해 이럴 땐 이렇게 느낄 수 있구나를 배웠다. 반대로 그들은 자신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옆에 덤덤하게 있어주는 나를 좋아했다. 자신들의 감정 기복이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더욱 본인다워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좋은 청취자였다. 나의 덤덤한 아쉬움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늦어버린 주장, 이젠 그 주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나는 그걸 하곤 했다. 친구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들의 감정을 흔들지 않을 만큼의 차분함이었기에.
대학 때 친구 때문에 속상했던 날이 있었다. 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내 얼굴에 뭐가 티 났는지 선배는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이미 알고 있어. 그걸 꺼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했다.친구 때문에 속상한 것뿐인데 원하는 거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깨닫기를, 속으로 감정을 삼키는 내게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내게 꼭 필요했던 말인데, 그렇게 표현하게 될 수 있게 된 지금에야 의미를 깨달아본다. 그 선배는 아마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도 조금은 생생한, 즉각적인 사람이 되었다. 생생해진 내가 좋다. 원하는 걸 알게 될 때까지 묘한 불편함을 견뎌낼 필요도, 덤덤하게 표현하게 위해 아쉬움을 곱씹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긍정적인 표현도 더 많아진 내가 좋다.나를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너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나의 변화에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