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코코, 잊혀지는 슬픔, 기억해내는 그리움.

제주 살이 28일 차

by 일기장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점심으로 인도카레를 먹고 한담해변을 조금 거닌 뒤 숙소로 돌아왔다.(일주일 전 애월로 이사 왔다. 인도카레는 무척 맛있었다!!) 오늘 유독 맑고 더워서 아직 여름인 듯 하고 이 날씨를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숙소에서 지붕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오션뷰로 만족해보기로 한다. 오늘을 제외하면 제주살이가 열흘이 남았다. 마음이 동하면 한 달 정도 연장하려 했었지만 서울에 일이 생겨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돌아갈 날을 정해두지 않은 듯이 지내왔는데 비행기표를 끊고 나니 조금 조급함이 생긴다. 열흘을 어떻게 지내야할까 시간이 아까운 마음과 현실의 걱정들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약간은 조급하다.

그런 마음으로 숙소에 앉아있자니 시간이 흘러가는게 아깝기도 하다. 방 한 구석에 기타가 보인다. 한 달이 다 되도록 한 번을 꺼내보지 않은 기타... 영화 COCO의 Remember me를 연주해보기로 한다.

Remember me는 제주 살이의 주제곡 같은 노래이다. 때는 제주 살이 첫 째주, 981PARK에서 무료로 상영해주는 영화관에서 비롯되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COCO를 보러가기로 했지만 나는 갈치구이를 먹고 체하는 바람에 숙소에서 쉬어야 했다. 10시쯤 숙소에 돌아온 친구들은 영화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피엔딩이지만 눈물이 나는 영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감상평은 평소 아주 현실적이고 때로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오빠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잘 지내실 거고 죽음 이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며 안심이 되기도 한다고. 그러려면 자녀들에게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할텐데 하며 가족의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그 이야기를 하는 오빠에게서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하루종일 COCO OST를 들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뒤 COCO를 보기로 한다. 나도 이전에 워낙 감명 깊게 본 영화이기도 하고, 여행 내내 COCO에 빠져있던 친구들의 감상을 함께하고 싶기도 했다. Remember me는 영화 속에서 총 세 번 연주된다. 첫 번째는 헥터의 곡을 빼앗아 전성기를 누리던 델라 크루즈가 스텝의 실수로 종에 깔려죽기 전, 노래한다. 이 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며 기억한다. 두 번째는 코코의 아빠(헥터)가 코코를 떠나기 전. 할머니가 된 코코는 치매에 걸려 딸도 못 알아보지만 어린 시절 떠난 아버지만은 기억한다. 세 번째는 미구엘이 증조할머니 코코가 아빠를 기억했으면 하며 불러준다. 아빠에 대한 기억조차 잃어가던 코코는 노래를 들으며 잠시 기억이 돌아와 아빠와 가족들을 기억해낸다. 세 번째 Remember me가 흘러나올 땐 눈물이 났다. 코코에게 기억해줘 라고 요청하는 것은 코코의 아빠 뿐만 아니라 코코의 딸과 살아있는 가족들이 모두 바라는 것일 거다. 가까운 사람에게 잊혀지는 슬픔이란 그런 것일 거다. 또한 이제 볼 수 없지만 그리워함으로서 그를 마음에 두는 것이다. 그리움은 힘든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로서 기억하고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노래한다.

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어릴 때는 천국이 있을 것이며 착한 일을 하면 그 곳에서 영생을 누리리라 생각했지만 사춘기가 지난 어느 날 생각했다. 죽고 나면 무(無)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깊은 잠을 잘 때 생각과 감정 없이, 내가 자고 있다는 인식 조차 없이 자듯 죽음이 그런 건지 모른다고. 나의 죽음에 가족들이 슬퍼하겠지만 나는 가족들의 슬픔에 함께 하지도, 슬퍼하는 것 조차도 모를 거라고. 아마 어떤 종교에 독실해지더라도 이러한 생각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짧은 생을 즐겁게, 따뜻하게, 사랑하며 지낼 수 있길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유투브를 보며 코드를 짚어보고 악보를 그리며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도 모른다. 문득 시계를 보니 11시가 되어 다음 휴식 때 다시 연습해보기로 한다. 숙소에 있는 게 아까웠었는데 기타를 연주하며,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알차고 뿌듯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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