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언제 다녀왔는지 너무 오래된 느낌이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또렷이 기억에 난다.
한 곳에 2-3주씩 머물렀던 지라 같은 식당, 카페에 자주 갔었다. 그닥 붐비지 않는 곳들이어서 두어 번 가면 사장님이 내게 아는 척을 하곤 했다. 내 성격도 꽤나 외향적인 편이기에 그런 인사가 반갑곤 했었다. 친구, 가족들 이외에는 동행자를 없었어서 사장님들은 내가 만난 유일한 인연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두 이주민이었고 그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자주 방문하는 걸 보니 오래 머무르냐고 묻곤 했다. 자신들이 처음 제주살이를 왔던 때, 그 이후로 제주를 잊지 못해 이주해오던 때가 생각나는 듯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서핑을 좋아해서 이곳으로 와 카페를 차린 사장님은 팔에 파도 무늬의 문신을 새겼다. 체격이 크고 다부진 느낌인데 인상이 선하고 카페 분위기도 아기자기했다. 널찍한 마당에 천을 깔고 누워있을 수도 있었는데 호박차를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처음 맛본 호박차는 달지 않지만 끝 맛은 달아 내 취향에 맞았다. 뷰는 잔디밭, 작은 나무, 하늘이 전부였지만 낮은 담에 둘러싸인 마당이 아늑하여 햇볕 쬐기에 좋았다. 직접 빚어낸 손잡이 없는 차우림 도자기에, 뜨거울까 주신 도톰하고 보드라운 천을 보며 세심하고 감성적인 분인가 상상해본다. 뜨거운 물을 손님 앞에서 직접 부어주시니 대접받는 느낌이 들기도,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걸 듣고는 자신도 제주에 와서 해보았다며 지금은 카페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조금 울적해하셨다. 혼자 카페를 운영하고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쉬기는 어렵다고 한다. 새벽에라도 가고 싶은데 아는 샵이 없어 갈 수 없다는 말에 겨우 두 번째 방문한 날에 내가 다니는 다이빙 샵을 소개해주고 말았다. 선한 인상에 파도를 팔에 새겨 넣은 열정, 아기자기한 카페 분위기, 약간의 울상에 생각보다 더 친밀감을 느껴버린 것 같다.
이제 추워져 다이빙 샵에 방문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감과 일찍 느껴버린 친밀감으로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마지막이라며 인사하는 내게 언제 제주에 또 오냐며 묻던, 내년이면 이곳은 문 닫을지도 모른다던 그의 작은 투정이 떠오른다. 이제는 서울로 돌아와 먼 곳이 되었지만 따뜻한 감성 덕에 그곳은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