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는 달랐다.
중학교 입학할 때에도 초등학교와 다름에 공포를 느꼈다. 변성기가 지나 굵은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는 선배들은 어른 같았다. 아이들은 출신 초등학교별로 떼 지어 몰려다녔다. 친구들과 떨어져 집에서 먼 중학교에 배정받은 나는 아는 얼굴 찾기가 더 어려운 중학교 입학식에서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럭저럭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집에서 훨씬 먼 곳으로 배정받았다.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옷을 사 본 경험이 없던 나는 당황했었다. 어찌어찌 몸에 비슷하게 맞는 교복을 골랐다. 다리 길이와 어깨 품이 넓었다.
“학생이 계속 자리니까 큰 것 사야 해요. 바지 아랫부분은 접어서 수선해 드릴게요. 손목 부분도 같이 수선할게요.”
처음 입은 기성복은 패션에 대해 전혀 몰랐던 열일곱 살이 보기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교복은 품질이 좋지 않았다. 바지 뒤쪽 엉덩이 부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책상에 오래 앉고 계속 입으니 헤져서 그랬던 것이다. 와이셔츠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살이 닿는 부분이 까슬까슬해서 따가웠다. 넥타이도 촌스러웠다. 당시 교복은 양복을 흉내 낸 따가운 옷이었다.
왜 남학생 교복은 양복을 흉내 냈는지, 여학생 교복은 치마만 입어야 하는지.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하였다. 교복의 의미를 고민하거나 디자인을 평할 개념조차 없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와 학교를 향했고 밤 10시가 돼서야 집으로 향하던 나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교복은 편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학교 가기 위해 따로 옷을 살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교복 착용을 완전히 지지하지도 않았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어른들이 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나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똑같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잘 사는 친구와 못 사는 친구를 똑같이 볼 수 없다는 것을, 옷만 같을 뿐 다른 것은 다 달랐다. 충분히 친구들의 살림살이를 알 수 있는 증거(?)들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교복을 입음으로써 학교가 다르고 학년이 다르며 옷 하나로 낙인 찍혀 상처받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어떤 교복 입은 아이가 지나가면 뒷말도 뒤따랐다.
‘저 애 OO 학교 다니나 봐, 우와 잘생겼다.’ ‘저 애는 △△학교 다니나 봐, 중학교 때 공부 못했나 봐.’
내 인생, 첫 기성복인 교복은 나에게 옷으로 평가받는 세상, 이름표 색깔로 함부로 대하는 선배를 알게 했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입지 않았다. 아니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특별한 옷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겨울철 농촌에 비료 포대 옮기는 일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새벽에 비료 포대를 받으면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지정한 장소에 포대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새벽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차에 탄 분들은 나의 옷보다는 기름값에 더 관심이 많았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멋진 옷보다는 손님들 기분 맞춰주고 술 주문을 많이 받으면 되었다. 전단지를 돌릴 때는 누가 알아볼까 봐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도망치듯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렸다. 독서실 총무를 할 때는 건조한 목소리로 돈을 받고 열쇠만 제대로 주면 되는 일이었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는 작업복이 있었는데 이것은 나에 대해 소개하지 않아도 그 조직 내에서 상대방은 나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정규직이 아니고 하청직원이라는 것을, 소장이 아니고 일용직이라는 것을 말이다.
교복이나 작업복에 대한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내 입으로 나를 설명하기 전, 항상 옷이 나를 설명해주었다. 옷이 나를 평가하게 했고 옷이 나를 틀 안에 가두었다.
지금의 난, 교복도 안 입고, 작업복도 입지 않는다. 단지 나이에 맞게 단정하게 옷을 입으려고 신경 쓴다. 똑같은 옷을 벗어나니 생각도 넓어진 것 같다.
자신을 우월하게 해 주는 옷이나 명찰을 뿌듯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인 사람이 더 많음을 안다. 반대의 사람들이 더 많기에 뿌듯해하는 사람이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뿌듯해하시는 분들도 아시면 좋겠다. 그 옷과 그 명찰을 달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도전하지만 모두 그 명찰을 달 수 없고, 그 옷이 빛나기 위해 아래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많이 계심을 알면 좋겠다. 내가 특별해서, 내가 잘나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에, 더 나아가 많은 분들의 정성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말이다.
출근할 때 단정하게 옷을 입기 위해 애쓴다. 옷이 나를 빛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작업복 입은 분들을 보면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려 한다.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은 슬플 것 같다. 겉모습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본다면, 귀하지 않은 삶이 없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교복은 좋지 않았지만, 교복을 입고 생활하던 학창 시절은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똑같은 옷을 입었던 그 친구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