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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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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Apr 11. 2021

전화 한 통이 그리움으로 남을까 봐

"아가들 잘 돌보고~잘 있어~."

이 말을 끝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빠는 9남매 중 여덟째다. 리듬감 넘치는 강원도 사투리로 내게 안부를 물은 이는 올해로 7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의 둘째 고모다. 어떤 이에게는 할머니로 불릴 나이지만.
태어나서 열여섯이 될 때까지, 나의 여름휴가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할머니 집이었다. 짧게는 1년에 한 번, 길게는 2년에 한 번 휴가 때마다 고모를 만났다.

"왔~어?"

애정 넘치는 목소리로 안아주던 고모였다.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게 되던 고등학생 이후 고모를 만나는 횟수는 줄었다. 몇 년에 한 번 친척 결혼식에 잠깐, 함께 있는 시간은  20~30분 전부였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두 달에 한 번 전화벨이 울렸다.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한 고모의 전화가 의아했다.

'별로 할 말도 없는데...'

때론 울리는 벨소리가 귀찮았다. 겨우 두 달에 한 번인데 말이다.
며칠 전 전화벨이 울렸다. 바쁜 일도 없었지만 밀린 집안일에 지친 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길을 걷다  문득 난 일상을 울리던 벨소리, 이 전화 한 통이 그리움으로, 후회로 남을까 봐 겁이 났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전화 한 통이 마음에 걸렸다.

'고모는 따뜻한 목소리가 그리운 게 아닐까. 시답지 않은 안부가 일상을 이어가는 힘이었지 않을까.'

출산 후 벨이 울리지 않는 전화기로 나는 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탐방했다. SNS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일상을 전시했다.  일상 전시관인 SNS 덕분에 지인들에게 전화로 안부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나와 너의 일상을 공유했지만, 마음은 공허했고, 외로움은 깊어졌다. 사진과 글로 주고받는 일상은 지하철역 전광판 광고처럼 그냥 스쳐 갔다. SNS는 전화로 주고받는 안부 속 온기가 없었다.

"고모, 지난번 전화 못 받아서 고모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전화기 속 고모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별일 없지? 아가들은 잘 크고?"

"네, 매일 아침 애들이랑 '어린이집 가자~안 가겠다' 며 실랑이해요."

"너도 그렇게 엄마 힘들게 하면서 컸어. 다 그런 거야. 엄마가 돼서야 엄마 마음을 알지."

"그러게요. 오늘은 돼지 갈비찜 해 먹으려고, 장보고 들어가는 중이에요"

"네네, 또 전화할게요. 들어가세요~"

5분이  안 되는 시간,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저녁 반찬거리 이야기로 채워진 통화였다. 그저 그런 대화로 마음을 안았다. 서로의 외로움을 한 숟갈 덜어냈다. 전화 끝 다시 전화기를 든다. 5년 전 연락한 사촌오빠. 지난겨울 새해 안녕을 기원했던 대학 선배.

"나야. 잘 지내지?"

나뭇가지 위 연둣빛 봄이 자라나던 날, 햇볕이 더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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