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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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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Apr 01. 2021

엽서 한 장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1시간 동안 학교 뒷산을 오르자 했다. 학교를 벗어나 나무가 우거진 산속을 들어갈 때쯤 내 발걸음을 함께 맞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우 14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니와 나는 '죽음'을 논했다.

주제는 심오했고 우리는 진지했다.

키 작은 나는 항상 앞 줄에 앉았고 동그란 얼굴에 은색 안경, 총총총 땋은 머리를 한 여니는 항상 뒷줄에 앉았다.

자리 위치는 상관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내가 가면 되니깐. EBS 교재로 자기 주도 학습을 하던 여니에게 반해, 잘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고 그 길로 나도 혼자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다.
의젓하고 조용해 보이는 여니가 참 어른스러워 보였다. 막상 친해지니 허당끼 가득한 그였다.

서른둘. 18년이 지나 여니와 난  두 남매의 엄마로 길 위에 섰다. 둘째는 "난 첫째랑 달라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유를 먹는 것부터 다르다.

한 번 걸었던 길이지만, 자갈밭을 걷다 큰 바위가 굴러오기도 하고, 잘 걸어가다 진흙탕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길 먼저 걸어간 여니의 마음이 작은 엽서에 꾹꾹  눌러 쓴 글 안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따뜻한 내 사람 덕에 비바람이 부는 밤이 스산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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