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 한참을 뛰놀던 아들이 소변이 마렵답니다. 한 손은 아들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둘째 딸을 들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화장실로 헐레벌떡 뜁니다. 화장실 변기 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보게 하려니, 변기가 너무 높습니다.
"아들 잠깐만, 영차!"
15kg가 넘는 아들 옆구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아들이 소변을 봅니다.
"엄마, 나 손 씻을래."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위생교육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소변을 보자마자 세면대에서 손을 씻겠답니다. 다시 아들을 번쩍 듭니다. 아들이 비누를 잡자 미꾸라지처럼 비누가 자꾸 달아납니다.
"아들, 대충 씻으면 안 될까?"
"안돼, 엄마. 손 깨끗이 씻어야 지지 벌레가 안 생긴다고 했어."
손 씻는 시간이라 해 봤자, 1~2분 내외지만 오로지 팔 힘으로 15kg 넘는 아들을 들고 있으려니, 팔이 덜덜 떨려옵니다.
"다 됐다. 내려줘."
아들을 내리자. 엄마와 오빠를 따라온 세 살 딸이 멀뚱히 서 있다. 한 마디 뱉습니다.
"나도."
오빠가 하면 꼭 따라 해야 하는 둘째입니다. 아들보다는 무게가 덜 나가지만, 10kg 넘는 딸도 무겁습니다. 둘째까지 손을 다 씻고 나니 진이 빠집니다.
'아이들이 혼자 손 씻을 수 있게 계단이랑 유아용 변기 시트 하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어른들에겐 편하지만, 아이들에겐 불편한 화장실
"아들, 계단 있으면 혼자 손 씻을 수 있겠지?"
"응, 맞아. 여기 계단 있으면 좋겠어."
100cm가 안 되거나 겨우 100cm 가 넘은 아이에게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자의식이 생기면서 세 살만 돼도 뭐든 스스로 하려 나섭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화장실에서는 보호자의 힘을 빌려야만 하죠. 아이는 스스로 하는 힘을 어쩔 수 없이 보호자에게 뺏기게 됩니다. 화장실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10kg가 넘는 아이를 이리저리 들며 도우미가 돼야 하는 보호자도 힘이 빠집니다.
과거 10년 전과 비교하자면, 요즘 화장실 환경은 어린이도 사용하기 쉽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백화점, 마트, 박물관, 고속도로 휴게소 등 많은 사람이 찾는 시설에는 '가족 화장실'이 있거나 아이들 키에 맞춘 유아용 변기가 화장실에 배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음식점, 상가,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일상에서 자주 찾는 시설의 화장실은 여전히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요. 물론 이런 시설들에 모두 유아용 변기나 낮은 세면대 설치하는 건 무리가 있지요. 이해합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우연히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님을 만났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다름이 아니라 부탁 하나 드릴까 하는데요."
"네, 무슨 일이시죠?"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자주 관리사무소 화장실을 가는데, 관리사무소 화장실에 유아용 변기 시트랑 계단만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변기와 세면대가 높다 보니, 아이가 이용하기에 참 불편하더라고요. 그 두 가지만 있다면 아이들이 화장실 이용하기 편할 것 같아요."
"아. 그러셨구나. 제 주변에 어린아이가 없어서 그런 불편을 몰랐어요.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매해서 설치되는 데 며칠 걸릴 거예요."
"네, 요청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주일 뒤, 놀이터에서 놀다 아이들이 어김없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화장실로 뛰어갑니다. 지난주와 다르게 화장실 변기 옆 유아용 변기 시트가 걸려 있습니다. 세면대 옆에는 계단이 생겼습니다. 유아용 변기 시트를 내려 변기 시트 위에 앉히자. 아들이 앉아 볼일을 봅니다.
▲ 아파트 관리사무소 화장실에 유아용 변기도 설치됐습니다.
"엄마, 저 계단 좀 내려줄래?"
계단을 내려주자. 아들이 계단 위를 올라 세면대 앞에 섭니다. 어린이 집에서 배운 대로 비누칠도 꼼꼼히 한 뒤 손을 헹굽니다. 스스로 손을 씻고 내려온 아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납니다. 아들 얼굴을 보고 저는 미소 지었습니다.
▲ 아파트 관리사무소 화장실에 유아용 계단도 설치됐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어린이였다
관리사무소 화장실에 유아용 변기 시트, 계단이 생겨난 건 아주 사소한 변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아주 큰 변화이자 배려입니다.
우리도 한때 어린이였습니다. 키가 크고 어른이 되면서 어린이의 세상을 쉽게 잊습니다. 어린이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은, 어른의 목소리에 가려진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어른이 대신 내주는 것 아닐까요?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만큼만은 어린 시절을 잊었던 어른들이 무릎을 꿇고, 시선을 낮춘 채 어린이의 세상을 잠시나마 바라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