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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Sep 01. 2018

갓 태어난 아이랑 물총 싸움을(?)

모유수유(2)

어릴 적 친구들과 물총 싸움을 할 때 제일 의기양양하는 시간이 있다.

총알인 물이 물총 가득 차 있을 때!

 그 어떤 상대가 와도 이길 자신이 넘쳤다.

한 손에는 묵직한 물총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열심히 물총을 펌핑하면, 물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힘차게 상대를 향해 직진했다.


그러나 모유수유는 물총 싸움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상대는 태어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다.

모유는 아이가 먹는 만큼 생성된다.

산부인과, 조리원에서는 엄마의 몸조리를 위해 아이에게 직접 수유(직수)를 적게 하고 분유나 유축한 모유를 먹인다.

덕분에 입원과 요양하는 내내 유축기의 노예가 된다. 3시간마다 유축하고,

 중간중간 아이에게 직수를 하다 보니 내 몸은 얼마나 모유를 만들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 몸은 열심히 아이에게 먹일 모유를 생성해냈고 가슴은 돌처럼 단단해졌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면  압력이 높아진 모유가 아이 입으로 물총처럼 발사됐다.

쏟아지는 모유에 아이는 컥컥 거리며 사레가 걸렸다. 사람들은 이를 ‘사출’이라 불렀다.

모유가 과다하게 만들어져 아이가 젖을 빨지 않아도 아이의 목구멍을 향해 젖이 쏟아지는 것이다.

사출로 아이는 모유를 먹을 때마다 사레와 싸워야 했다.

아이가 모유를 먹다 멈추고 젖에서 입을 떼 버리면 아이의 얼굴뿐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젖줄기가 튀었다.

스스로 빨기도 전에 입 안 가득 넘치는 모유를 먹기 위해 아이는 허겁지겁 모유를 삼켰다.  

동시에 공기도 아이 입 속으로 소화기관으로 들어갔다. 모유로 배가 차기도 전에 공기로 배를 채운 아이를 5분마다 세워 안고 트림을 시켜야 했다. 엄마의 모유 사출이 심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보다 방귀도 잦았다.


아이에게 모유를 잘 먹이기 위해 우선 사출을 예방해야 했다. 예방책은 ‘양배추’.

‘살다 살다 별짓을 다해보네.’

싱싱한 양배추를 냉장고에 넣은 뒤 조심스럽게 한 잎 한 잎을 따 가슴 구석구석 얹었다.

양배추는 가슴을 차갑게 만들어 모유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혈액 순환을 더디게 만들어줬다.

잠들기 전 양배추를 가슴 위에 붙이며 숨 쉴 때마다 양배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새벽 4시면 눈을 떠 유축할 때면, 파릇파릇했던 양배추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에 찜기에 들어갔다 온 모양새로 축 쳐져있었다.

조리원에서 지내는 2주 동안 가슴에서 툭툭 털어낸 양배추만 5 통이었다.


모유양이 아이가 먹는 양에 맞추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한 달이 걸렸다.

출산이 50m 달리기면 모유수유는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이었다.

결승선을 6개월 뒤로 할지, 1년 뒤로 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모유를 먹는 아이를 보며

"‘사출’ 코스를 어렵게 통과한 난 결승선까지 별 탈 없이 잘 달릴 수 있을까."

하고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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