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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Nov 11. 2018

무너진 몸

출산 이후

바다에 사는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거친 물살을 뛰어넘어 강으로 간다.

물살을 거스르며 연어는 바위에 몸을 찢겨 강물에 다다랐을 때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알을 낳고 부화에 성공한 어미 연어는 모든 체력을 다 써버린 탓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정각을 가리키던 분침이 30분에 가 있다.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높낮이가 없는 딱딱한 기계음이 나를 진료실로 호출했다.

“미국 산모들이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수영합디다. 내 눈으로 직접 봤다니깐. 우리나라는 산모들을 너무 보호해서, 원. 뭐 물론 인종 간의 신체 차이는 있지만...”


출산 후 허리, 골반, 손목이 욱신거렸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찾은 병원이었다.

‘여기, 저기, 거기’ 하며 아픈 곳을 말하자 의사가 혀를 찼다.


 ‘그런데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잖아.’라고 내뱉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원인이 너무나 궁금했다. 하나라도 더 묻고 답을 듣고 싶었다.


의사의 말에 그냥 사람 좋은 웃음만 ‘허허’ 하고 말았다

조명에 하얀 뼈들이 반짝 비쳤다.

의사는 가만히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봤다.


“골반이랑 허리가 너무 아픈데, 혹시 골반이 비틀어져 있나요? 출산하면서 꼬리뼈가 들린 것 같아요. 허리 아픈 원인이 꼬리뼈 때문일까요?”


의사는 가만히 앙상한 내 뼈 사진만 들여다봤다.

아픈 원인을 알면 해결방법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난 쉴 새 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허 참. 양쪽 다리에 주는 힘이 다른데 어떻게 골반이 정상일 수 있어요. 골반은 비틀어져있을 수밖에 없어요. 방송 보면 의사들이 골반 맞춰주지요? 그거 다 쇼에요. 만성이 돼서 왔는데 어떻게 원인을 알 수가 있나.”

의사의 목소리가 한 층 올라갔다. 귀찮은 듯 대답을 하며 내 척추를 만졌다.

“이렇게 많이 아픈 환자는 어느 병원 가서도 대접 못 받아요. 모유 수유 중이라면서요.

 약 쓰기도 어려우니 물리치료나 받고 가세요. 손목은 반깁스합시다. 최대한 안 쓰는 수밖에 없어요.”


딱딱한 침대 위 눕자 전기 치료하는 물리치료기계를 치료사가 끌고 왔다.

“벽보고 누우세요.”

치료사가 기계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허리에는 전류가 피부를 지나 근육으로 물이 졸졸 흐르듯 흘렀다. 이따금 찌릿찌릿할때면 엉덩이가 절로 들썩여졌다.

‘많이 아픈 환자는 어느 병원 가서도 대접 못 받는다.’

의사의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산모는 아파도 아프다 소리 못 하나. 내 돈 주고 진료받는데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망할! 의사가 대수인가.’


붕대로 칭칭 감은 왼손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100일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생후 3개월.

아이의 까맣고 동그란 눈 안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담겼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3.54kg으로 태어나 100일이 되자 몸무게가 두 배로 늘어났다. 체중계 숫자는 7.5kg를 가리켰다.

반깁스 한 채로 아이를 안을 수도 수유할 수도 없었다.

문득 알을 낳고 강물을 따라 배를 뒤집은 채 힘없이 둥둥 떠다니던 연어가 떠올랐다.


낮잠에서 깬 아이가 나를 찾으며 울어댔다.

왼쪽 팔 꽁꽁 싸맨 깁스를 풀고, 무너진 몸을 바로 세우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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