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조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린 Jul 01. 2021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를 먹는다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른이 되니깐 기분이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해요.”


감독님과 인터뷰. 그와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덟 살. “내가 스물다섯이면 ‘어른’이겠지 ”하며 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어린이는 어른이 됨을 기대했다. 어른은 주어진 일을 착착, 탁탁. 완벽히 문서와 서류를 정리하는 직장인. 정갈하고 반듯한 직장인이라 생각했다.

‘유럽 여행, 자라섬 콘서트 가기 등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거야.’

대학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 살던 청소년 때는 어른은 곧 ‘자유’와 같았다.

어린 나에게 어른은 그런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어른의 통과의례처럼 호프집을 찾아 호기롭게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첫 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빈 잔을 탁자 위 내려놓은 나는 말했다.


"이걸 도대체 왜 마시는 거야?"


강의가 끝난 대학가의 밤은 술과 함께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다. 동기와 선·후배와 양은 대야에 넘치도록 담긴 술을 마시며 어른임을 인증했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사고 치지 않는 사람. 허옇게 분칠하고 빨간 틴트를 바른 한 대학생에게 어른은 그런 거였다.

2008년 당시 학회 회장이 되면 양은 대야에 담긴 술을 다 마셔야 하는 (지금 생각하면 아주 폭력적이고 무식한) 통과 의례가 있었다. 사진학회 활동을 하던 나는, 입대를 앞둔 동기들 덕에 자연스레 학회 회장 자리가 내 것이 될 판이었다. 학회 회장보다 양은 대야에 술 마시는 게 더 싫었다. 그런 내게 선배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야”며 위로했다.

선배 말은 ‘책임감이 뭐든 할 수 있게 만든다는 뜻이었을까?’


스물여섯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선배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만, 내가 만난 어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권위와 권력을 꽉 쥔 덜 자란 아이였다.

아이의 순수성은 없고 오로지 제 자존심과 욕망을 지키려 아등바등하는 모습이었다.  


‘정의’, ‘민주주의’를 안줏거리로 떠들면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자기가 까먹는 귤껍질 하나 치우지 않는 인간. 그걸 아랫사람이 치워주길 기다리는 인간.

밥 한 끼 사주며 네 편 내 편을 나누고 회유하는 인간. 제 편이 아니라고, 제 마음에 안 든다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인간.

여성, 노동자 인권 등 사회적 이슈에 핏대 세워 떠들지만, 정작 본인이 행한 성희롱은 억울하다며 떼쓰는 인간.

자리 즉 ,‘팀장’, ‘차장’ 등 직함은 단어 그대로 ‘직함’이었다. 선배가 틀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마치 어른이 덜된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20대 중반. 경찰서, 시청, 업체 등에서 만나 상대하는 취재원은 40~50대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10여 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눈속임', '허언', '자기 과시', '허세', '처세술' 등에 능했다. 나는 그들을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 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합리화가 잘 안 되었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그냥 ‘누구야~’가 아니라 ‘기자’라고 불러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제가 틀렸어요?”


사회서 만난 어른들은 날 동등한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였다.

덜 익은 사회인이 아닌, 당신의 여동생이 아닌 직업인로서, 기자로서 존중해달라는 외침도 수시로 밟혔다.

나의 외침은 “기자라고 뻣뻣하게 목 들지 말고, 여동생처럼 굴어, 그래야 편해. 친해진 뒤 상대의 정보 캐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는 말로 돌아왔다.

상대에 대한 존중보다 요령을 배우는 게 먼저였고, 존중보다 얼마나 직업 수행 능력을 올리느냐가 더 중요했다. ‘나이 듦’은 상대의 존중보다 자신에 대한 존경, ‘나이 듦’에 대한 권위를 존중받기를 원했다.


'아, 빨리 오십 대가 되고 싶다.'


직장 생활 내내 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이의 숫자가 늘고, 겉모습이 늙으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적어질 거로 생각했다. 매번 그들에게 보이는 추한 모습은 매번 나를 다짐하게 했다.

'나는 저렇게 나이 먹지 않을 거야.'


물론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른도 만났다.

"이건 아니잖습니까."

모두 다 옳다고 할 때 잘못된 점을 용기 있게 말하는 어른.

"미안합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잘못된 상황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사과하는 어른. 잘못된 일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

하루에 한 번 나를 되돌아보고, 나의 설익은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지 않았을까 살펴본다.


나이라는 숫자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경험이 쌓인다. 덕분에 내 삶의 반경은 한 뼘씩, 한 뼘씩 넓어졌다.

구독 서비스, 문화기획자, 글쓰기 강사 등등 '완벽주의자'가 아닌 '경험주의자'가 되자는 다짐 덕에 일상의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하다. 삶의 반경을 넓혀가며 내가 보아온 어른의 추함을 경계하며, 추함을 닮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감독님의 말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전 막상 서른이 되니깐 별반 달라진 게 없어서 헛웃음이 나던걸요?

2라는 숫자가 3으로 바뀐 뒤로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슬프지 않아요. 되레 즐거워요.

저는 온갖 경험을 겪고 느끼면서,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꾸준히 책 읽고, 글 쓰는 할머니로 늙는 게 꿈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쯤 우쭐댈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