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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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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Jun 27. 2021

언제쯤 우쭐댈 수 있을까

차를 타고 먼 곳을 가지 않는 주말.

별다른 계획이 없는 날은 슬리퍼 신고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다.

내 검지를 단단히 움켜쥔 딸은 종종걸음으로 내 느린 발걸음에 발을 맞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여름 하늘과 높이 뻗은 무성한 초록만으로 마음은 충만해진다.

평범하지 않는 일상이 특별해지는 건,

시간 틈틈이 매워지는 아이들의 웃음과 말 조각 때문일 거다.


"엄마 손으로 하트 같이 만들자."

"하유니 언니 같았지?!"


눈을 마주치고 웃었을 뿐인데,

아들은 달달하게 사랑을 고백한다.

높은 계단을 스스로 올라온 딸은 자신의 성장에 스스로 감탄한다.


지난 일주일 내내 했던 일을 털어내고, 인터뷰, 강의, 미팅 등이 빼곡히 적힌  일주일이 내 앞에 놓여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아- 재미없어.'


하나씩 찍어낸 글을 읽다가 Ctrl+A (전체 선택)를 눌러 Delete(삭제)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고민하다 결국 다시 한 글자도 채우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공백을 만들고, 글과 거리두기 한다.


중고서점 장바구니 담겼던 책을 주문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책 속에 내 선배들, 선생님이 있기에 인상 깊은 문장을 공책에 옮겨적는다. 문장을 꼭꼭 씹으며 읽고 또 읽어본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또 나와 씨름한다.

글에 최선을 다해도 다시 돌아보면 남는 건 온통 '창피함', '부끄러움' 뿐이다. 할 줄 아는 게 이거라서, 그래도 쓰고 또 쓴다.

고민 끝에 마침표를 찍은 글은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듯 툭 털고 앞으로 나간다.


높은 계단을 올라온 딸처럼,

언제쯤 나도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쓰고

"나 잘 썼지?" 하고 한 번 우쭐댈 수 있을까?


노란 달이 채워지는 밤, 여름밤 공기가 삐질 흐르는 땀을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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