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나를 믿고 싶은 순간
처음 번지점프를 했을 때 느낌은 '자살'하는 느낌이었다. 놀이기구를 박수치면서 통쾌하게 웃으면서 탈만큼 좋아하고, 놀이공원에 가면 쓰러질때까지 노는 사람이지만 그건 안전장치를 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번지점프는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해도 내가 스스로 내 발로 뛰어야 하는, 내 이성을 거스르는, 내 목숨을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내 등을 살짝 떠밀 수 있는 용기와 무릎을 살짝 구부려 앞발에 힘을 주어 내 몸을 바닥에서 떼어낼 수 있는 아주 큰 힘이 필요하다. 막상 딱 그 앞에 서면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10분 이상 한 참을 못 뛰고 있으니 밑에서는 지인들이 그냥 내려오라는 손짓이 보이고, 짜증난 안전 요원은 "처음에 못 뛰면 시간이 지날수록 못 뛰어요"라고 말한다. "그냥 내려가실겁니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돈 아깝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 순간 마음속에서 말한다. "그래,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기는 쪽팔리고, 그냥 점프해서 내려가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나무토막과도 같이 굳어 있었던 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내던지는 순간, 엄청난 중력의 무게가 나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시키는 공포를 순간 느꼈다. 심장이 입 밖으로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느낌이랄까.
1분이 1년 같았던 죽음을 각오한 대가치고는 성공은 찰나의 짜릿함과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번지점프를 하는 이유는 이 찰나의 짜릿함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이 짜릿함 다음에 오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새 삶을 얻은 기분이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받은 것 같았다. 삶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신선함이 마음에 들었다.
녹슨 장비를 들고 고장난 집을 고치는 느낌이랄까. 내 머리와 손은 어느새 굳어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다시 나를 자판기 앞에 데려다 놓았다. 머리는 말한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할 일은 많고, 인생의 우선순위가 있고,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나보다는 아직 가정을 지키고 일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은 새로운 도전과 연결을 갈망하고 있는듯 하다. 체력적으로, 현실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에 계속 미뤄왔으나 이제는 스스로를 절벽 앞에 세운다. 어떻게든 이번에도 살아남을거라며, 눈물을 짜내는 성장통을 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깊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꿈을 상상하며 부러워만 하지 말고 아무런 대가도 기대도 없이 그저 그 꿈을 일상에서 매일 살라며, 다시 한 번 절벽 위에서 다이빙을 준비해 본다.
손이 녹슬게 되는 이유는 마음과 머리의 거리가 멀어져서 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과 손의 거리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드려다보는 작업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인데, 내 마음과 생각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손이 굳어진다. 글쓰기는 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손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손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이 훈련이 되면 나중에는 손이 내 마음보다 빨라진다. 일단 손이 쓰고 나면 마음이 알아챈다. '아,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었구나. 나 힘들었었구나. 나 행복하고 싶었구나. 내 마음이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말하고 있었던 거구나. 내 마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이렇게 내 마음을 마치 타인을 알아가듯 고요함 속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녹슨 안전장치를 하고, 절벽위에 나를 세우고,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음미한다. 등 뒤에서 나를 살짝 밀어본다. 죽음을 마주한 용기를 낸 대가로 얻은 성공의 짜릿함은 찰나일지라도, 다시 두 발을 확고하게 바닥에 내딧는 순간, 나의 삶은 예전과는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다시 나를 절벽위에서 밀어본다. 벌써 무섭고, 벌써 짜릿하고, 벌써 설레이고, 벌써 재미있다. 글을 통해 나를 만나는 그 경험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