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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

by 내 마음 맑음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근데 요즘 내가 너무 글쓰는 것에 미쳤었나보다. 남편이랑 같이 있을 때는 글 얘기를 하고, 남편이 잠들기 전에도 글을 쓰고, 아침에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도 글을 쓰고 있으니, 남편도 아이도 글에게 나를 빼앗긴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나보다. (음… 마치 상대방과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중단할 수 없는 것 같이, 문장 하나를 시작했으면 마침표는 찍고 가야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한번 머리에 생긴 생각은 종이에 다 토해놓고 가야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근데 내가 자제 하는 수 밖에. 남편이 게임을 최근 내가 글쓰기 하는 것처럼 했다면, 나는 컴퓨터 전원을 뽑는 걸 넘어서 컴퓨터를 없앴을 것이다.)


내림이 항상 오는게 아니다. 글신이 오셨을 때 받아야 한다. 이건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유레카’를 외친 그런 상황이랄까! 이렇게 갑자기 글내림이 오면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하다 말고 달려가서 써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 읽으면 창피해서 살아남은 글이 거의 없다해도 말이다.)


한번 계시를 받아 흥분하면, 말이든 글이든 막 쏟아내는 병을 가진 나는 웬만한 명상과 운동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을 갖고 있다. 사실 그래서 글을 더 쓴다. 다 하지 못한 말을 글로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글은 내 마음을 아무 편견없이, 아무 평가없이 다 들어주어서, 글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 마음이 편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해왔던 잔소리에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남편은 결국 나에게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를 찾으니까 글쓰기 중단하고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이미 시작한 문장 급하게 마침표만 찍고 마무리 하고 나가려는 순간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슬펐다. 그 순간! 아, 남편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잔소리를 이렇게 들었겠구나 싶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어! 다만 지금은 상황이 좀 급해! 근데 바로 할게!” 라고 속으로 말했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고귀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나를 잊고 사는 시기가 온다. 나를 처절하게 찾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가 나의 손을 놓쳐버려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다 보면 나와 내 마음이 서로 멀어진다. 그럴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 받고 싶은 욕구, 나를 찾고 싶은 욕구가 짜증이나 잔소리로 나온다. 자존감이 떨어졌던 나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 육아의 신, 남편에게 많은 잔소리를 했었던 것 같다. 미안했다. 그리고 글로써 나를 찾고, 내 업을 찾은 지금 나는 변화하고 있다. 잔소리 따위 하지 않는 좀 더 자상하고 따뜻한 아내이자 엄마로 말이다.


며칠 전 남편이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물어봤다. 정말 원하고 필요한 것이 하나밖에 없었다.



“시간”

"독서하고 글쓰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제일 갖고 싶어!"



남편은 그래서 그렇게 해주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시간을 선물로 주려고 아이와 함께 동물원을 다녀오고 온전히 하루라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난 평소에 내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바로 획득하고, 거기에 시간과 고민을 소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매일 평소에 그 어떤 선물보다 가치있는 소중한 일상과 따뜻한 사랑을 선물해준다. 최고의 아빠이고 훌륭한 남편이다.


평소에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모두 갖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미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갖고 싶은 것은 하나 밖에 없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몰입할 수 있는 시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 내가 배움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시간, 나의 소중한 삶과 사유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남편은 내가 가장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을 나에게 생일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선물해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남편이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남편도 자기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남편에게 시간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줄 것이다.)


대학시절 누군가의 기대에 따라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없었다. 사회의 기준, 부모의 기준, 교수나 친구들의 기준과 주변의 기대가 나를 꼭두각시처럼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껍데기로 살았다. 지금 나는 내 마음 소리에 귀 기울여 내 기대와 소망에 따라 살고 있다. 행복하다! 내 마음속 기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매일 느낀다.


음악을 안 들은지 오래됐다. 명상할때 듣는 배경음악 말고는 가사가 나오는 음악을 동요 말고는 3년동안 안 들은 것 같다. 아니 더 오래된 것 같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노래방 가서 소리지르며 가사를 토해냈던 노래 말고는, 10년 동안 노래를 제대로 즐기며 감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상사는 대체 왜 저러고, 내 일은 왜 이렇게 네버 엔딩일까를 한탄하며 밤 10시에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Sia의 <Chandelier> 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부른 적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음악을 향유한 것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 영화에서 마지막에 결국 여주인공이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하지 못하고 글쓰기로 영화를 마무리 하는 엔딩을 보면서 불만이었다. 결국 그것이 많은 엄마들의 현실이긴 하지만, 고작 글쓰기로 여주인공이 자아실현을 하고,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다는 설정은 지나친 자기합리화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틀렸었다. 글쓰기는 정말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지쳐있는 내 마음을 치유해 주는 친구 같았다. 내 글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내 글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삶에서 글을 보고, 내 글에서 나를 본다. 서로 닮아간다. 그래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나 보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나 보다.



© Kranich17,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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