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마음 맑음 Nov 21. 2023

실패는 자산이다


"좌절은 혁신적이고 좋은 아이디어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연료이다." (Frustration is fuel that can lead to the development of an innovative and useful idea._by Marley Dias)



내가 이분을 추억하게 될 줄이야... 호랑이 같이 무서운 분이었다. 5년 안에 배울 것을 1년 안에 배운 것 같다. 그분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편집장 같은 업계 최고의 레전드였고, 나는 이제 막 입사한 아무것도 모르는 안드레아였다. 함께 일하고 싶은 안드레아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죽도록 힘들었다. 이 분이 한국 사회에 가지고 온 트렌드와 열풍을 나열하면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것들이 많다.


한 번은 해외 출장을 같이 갔다가 상사와 같은 방을 쓸 수밖에 없었고, 엄청 큰 더블 침대에서 같이 잘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호랑이 옆에서 내가 그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방에서 살얼음 걷듯이 걸어 다녔고, 이불의 뽀시락 소리를 안 내려고 새벽이 어서 빨리 내 몸에 얼음땡을 해주길 바라며 새우처럼 얼어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 많은 업무 실수를 했었고, 첫 직장의 첫 번째 상사는 성인처럼 착서 내 실수를 모두 포용해 주셨다. 나보다 1년 일찍 시작한 선배였고 나에게 잘해주신 건 정말 감사했고 그렇게 좋은 분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지만 성장이 없다고 느꼈었고, 내 손으로 연봉을 깎아서 내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성장과 배움을 갈망하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아마 무지한 내가 스스로 답답해서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정말 많이 혼나면서 배웠다.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고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너무 질리도록 혼나고, 너무 질리도록 일을 해서 다시는 이 일을 안 할 거라며 직업을 변경해서 아예 업계를 떠났었다. 그런데 돌아 돌아 다시 여기 있는 내가 아직 믿기지 않는다.

당시 업무량을 봤을 때, 사원에서 대리급의 직원 세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팀장급이 해야 하는 업무 조율과 의사결정을 내가 감당하고 있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만두고 싶어 했는데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달래다가 "아침에 회사에 오기 싫어서 차라리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라며 사람이 북적북적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보고, 바로 그만두라고 말했다. 나 살자고 이 친구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새로운 분이 오기까지 1년을 홀로 그 친구 몫까지 감당했다.  



호랑이 같이 무서운 분에게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일을 배웠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분에게 배운 것을 딱 한 단어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배려'다. 그분은 나에게 일처리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란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그분이 섬세하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신경써서 하는 것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고, 전체적으로 원활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내부 직원들 뿐만 아니라, 외부 업체들과의 신뢰관계와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중요시하셨다.

마냥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어떻게 말하고 쓰는 것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인지 가르쳐 주셨지만, 특히 명확한 기준과 프로세를 갖고 일하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명확한 기준과 목표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여기서 함정은 일을 프로페셔널답게 못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과 동의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내가 그랬듯, 모든 사람은 성장하고 배울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는 신문에 '멋있는 일이란 없다. 멋있게 일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광고를 보며 "이거 진짜 멋진 말이다" 라며 광고 카피를 마음에 쏙 들어하던 그녀를 보며, 멋진 말이 멋지다는 것을 알아보는 멋진 그녀를 위해 쓰인 카피 같았다.


그 후로도 나는 살아가며 일터에서 그리고 삶에서 수많은 인생 스승을 만났다. 그분들이 나를 만들었다. 관점의 힘을 알려주신 분,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알려주신 분, 비전을 중심으로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신 분, 겉으로 보이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기를 파악해서 분석하는 힘을 알려주신 분,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사고 구조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통찰을 알려주신 분, 사람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신 분, 현장의 어려움과 고객의 니즈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정책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신 분, 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음을 가르쳐주신 분,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신 분, 화와 스템이 개선되면 개인도 성장할 수 있음을 알려주신 분, 누군가를 다스리려 하지 말고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함을 가르쳐주신 분, 셀 수 없이 많은 스승과 배움이 있었다.   


내 남편도 나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큰 그림과 전체를 보고, 어려움이 있는 현장과 사람을 보고, 말은 입으로 하지 않고 헌신의 리더십과 솔선수범하는 행동으로 말을 했으며, 사람에 대한 배려는 빠른 의사결정과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보여주었고, 깊이 있는 마음과 생각으로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었다. 운이 좋게도 살아오면서 정말 훌륭한 스승을 많이 만났다. 내가 이제 그분들의 나이와 비슷해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배려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어딜 가나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고, 문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에게도 장, 단점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있다. 장소를 바꾼다고, 상대하는 사람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을 가도, 다른 사람을 만나도 유사한 형태로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내가 계속 부딪히고 좌절을 느끼는 부분이 어느 지점인지 알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번 문제를 해결해 보고 문제의 수준을 넘어보면, 다음 문제와 갈등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한 번 큰 산을 넘어보면 웬만한 산은 동네 뒷산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좌절과 실수에도 기한이 있어서 나이 들수록 감당이 어려워진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실패가 결국은 가장 효과적인 삶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좌절은 빨리 맛보는 것이 현명하다. 실수를 해야 개선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하기 때문이다. 


업무에만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운영과 한정적인 시간 관리에도 필요하다. 일이든 삶이든 현재 나를 좌절시키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프로세스가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지금 내가 좌절을 겪고 있다면, 좌절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다.

지금 내가 실수가 많다면, 실수를 배움으로 만들 수 있는 계기다.

지금 내가 실패하고 있다면,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때다.

빨리 많이 실패하라. 이것이 혁신의 연료다. 


걱정 마시라. 그때 바로 깨닫는 것은 어려우니 힘든 것이 당연하다. 나도 10년이 지나서야 진짜 배움과 가짜 배움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