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은 찰나에 깨어있어야 하며,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만 무의식을 바꿀 수 있고, 마음을 바꿀 수 있고, 습관을 바꿀 수 있고,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몸의 원리를 알고 몸을 고치듯, 정신과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를 알면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수행의 과제로 전환시켜 해결해 나가고, 일상에서 늘 점검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모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매 순간 연습하라. 자전거를 타다가 자꾸 넘어지듯이 잘 될 때까지 연습 삼아 자꾸 해봐야 하고, 계속해서 마음도 연습을 해야 한다."
아래는 법륜스님의 0~3세까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소아정신과 연구에서도 검증된 자료가 많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이 맞든 틀리든 내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실천하면 무조건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엄마로서 내 삶에 적용한 부분이다.
정신 작용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컴퓨터를 사면 아무것도 깔리지 않는 것과의 상태이다. 그 컴퓨터에 기본 바탕이 깔리는 상태가 3살까지 이다. 아무 것도 없는 컴퓨터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까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3살까지는 심리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3살까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심리가 안정이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싸우거나 엄마가 심리가 불안하면 아이가 심리 불안이 형성된다. 현시대에 아이들이 정신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도 있지만 3살 전 아이에게 심리불안이 형성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심리상태나 행동양식이 어땠느냐에 따라 아이의 심리상태가 전적으로 결정된다. 이 시기에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 죽을 때까지 잘 안 바뀐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고, 엄마의 불안, 우울, 스트레스가 모두 아이에게 간다. 엄마는 상황적으로 당시에만 우울과 불안을 겪을지 몰라도, 아이는 평생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을 무의식에 내재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도, 무엇을 해도,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항상 불안해하거나, 화가많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3살 전에 정서적으로 모두 형성된 내용이다.
아빠가 할 일은 엄마가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부인을 위해 가사와 육아를 함께하고, 일찍 들어가고, 언제든 남편이 부인 옆에 함께 한다는 식의 안정감을 주어야 부인도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수 있다. 시어머니도 주변 가족들 모두 마찬가지다. 여자로서 엄마를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자식의 엄마로서, 내 손주의 엄마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 인재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다른 가족, 세상과 주변이 전쟁이 나든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심리상태가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를 잘 보호해 주면 아이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때 형성된 것은 우리의 무의식이 되어 자동으로 반응을 하게 된다. 요즘은 부모가 자기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약하다. 4살부터 10~12살까지, 초등학생 까지는 흉내를 아주 잘 내고 무엇이든 흡수하고 따라 배운다.
생물에게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첫째는 자기 생명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성질이다. 이것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첫째를 생존보존의 본능이라 하고, 둘째를 종족보존의 본능이라고 한다. 이게 있어야 그 종이 지구상에서 지속될 수 잇다. 어린 새끼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를 보호하는 동안에는 부모는 자기 생명보다 새끼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모든 생물에 어미의 본능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의 인권의 측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의 내용이 아니라,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서 자신의 새끼를 돌보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