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두 가지

by 내 마음 맑음

아이를 키우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점이 있다. 먼저 나랑 상관없는 관계로 밖에서 만나는 타인과의 관계이다. 특히 3세 전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가 귀엽다고 아이 볼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 팔, 다리를 당연하듯이 만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안아보겠다고 아이를 달라고 말한 처음 보는 중년 아저씨도 있었고, 몇 번 봤다고 이웃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아이를 번쩍 들어버린 아저씨도 있었다. 나는 다른 부분은 서로 논의를 통해서 내가 경청할 자세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예민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문화려니 하고 아무 말 못 하고 순간적으로 지나갔는데, 코로나 시국에도 어른들의 터치가 멈추질 않아 아이를 만지지 말아 달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아이가 귀여워서 만졌다고 말을 하지만, 귀여우면 만져도 되는 걸까? 아이도 한 사람이고, 성인과 똑같은 한 인격체이다. 예를 들어, 남녀를 떠나서 성인이 처음 본 다른 성인을 귀엽다고 몸을 함부로 만지면 성추행으로 신고를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길거리나 식당에서 처음 본 사람이 함부로 아이 얼굴과 몸을 만지는 걸까? 이런 행위가 괜찮은 문화라는 것이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만져도 되냐고 부모와 아이에게 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어른들은 무조건 손부터 나갔고, 아이 얼굴, 볼, 손, 팔,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비비고 만졌다. 부모와 아이에게 만져도 되냐고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남녀노소, 나이불문, 본인 허락 없이 얼굴과 몸을 만지는 것은 범죄(성추행)로 간주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밖에서 처음 본 사람이 내 아이를 만져도 되냐고 제발 물어봐 준다면, 나는 당연히 안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물건, 식물, 동물도 만지지 말고 보기만 하라는 주의 문구가 붙어있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몇몇 사람들의 인식이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다. "예뻐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만지지는 말아주세요."라고 꼭 말로 해야만 하는 걸까?


두 번째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점은, 지금까지 명확하게 말로 표현은 못 했지만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로 인한 갈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인생의 코스가 정해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공부-> 희생적인 부모가 (다 자식을 위해서)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줄 착하고 모범적인 자식 되기-> 부모가 자랑할 만한 좋은 대학-> 부모가 원하는 좋은 직장->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결임출(결혼, 임신, 출산) 3종 세트-> 첫째 아이 돌잔치 중에 둘째 빨리 가지라는 주변의 말들-> 첫째가 걷고 옹알이 시작하면 슬슬 둘째 압박-> 최소 아이 둘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레퍼토리-> 아들 타령+혈통 타령 레퍼토리-> 그리고 이 모든 코스를 다시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하는 악순환.' 내가 아직 모르는 다른 인생 코스가 또 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각자 여기서 최소한 한, 두 가지는 해당사항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자아이 한 명, 여자 아이 한 명 있으면 좋다며 신도 모르는 아이 성별과 명수는 누가 정한 것일까?


나는 이런 정해진 것 같은 인생 코스를 극도로 혐오한다. 소중한 한 생명을, 귀한 아이의 인생을, 존엄한 한 인격체를 ‘혈통'이라는 단어와 '최소 몇 명’이라는 숫자로 말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증오한다. 그리고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는 이 코스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이를 과거에 잘 지켜오면서 살아왔는지,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살아갈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이 코스가 좋아 보이면 타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본인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대체 왜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런 말을 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체 왜 타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자신이 득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대체 왜 사회적 통념과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요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나는 그렇지 않았는지 나부터 심각하게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내 경우 아이가 만 2세다. 나는 주변에서 둘째를 가질 거냐는 질문 혹은 친정에서 둘째를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압박이 아니라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이런 말을 무시하라고 하지만, 내가 무시하기 전에 먼저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내가 무시해도 되는 말을 왜 하는 걸까? 한국 사회와 한국 가정의 일반적 통념은 왜 내 딸의 동생을 미리 정해주는 걸까? 그것도 부모의 허락도 없이.


한 인간으로서 내 꿈과 내 삶의 계획에 대해 그러려니 해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나 같은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인생 코스는 반감만 줄 텐데 말이다. 뭔가를 하려고 계획을 했다가도 내 인생에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 침범을 당하고, 타인에 의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를 받으면 하기 싫은 게 나니까. 다른 게 괜찮다면 이런 말쯤은 아무리 들어도 웃으며 넘어가는 게 맞는 걸까?


나는 36개월까지 최대한 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 후로도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첫째를 그렇게 키우고 있고, 둘째가 태어나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 없다. 특히 말 못 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와 자기 엄마에게서 사랑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그게 부모라면 더더욱 그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 대신 누구도 출산과 육아를 대신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출산과 육아에 관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가정 계획은 철저하게 부부가 논의해서 해야 한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과거 철없던 시절도 있었고, 남편에게 상처 주고 힘들게 한 적도 많아서 항상 미안하지만, 나는 남편을 믿고, 우리를 믿고, 우리 가정을 믿는다고 말이다. 부부가 함께 논의하고, 부부가 정말 준비가 되고, 정말 원하는 것이 있어서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서로 상의하고, 깊은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을 믿고, 우리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딸도 아직 어리지만 나이가 들면 서로 잘 돕고 서로 가족끼리 배려해 주는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우리 셋이라면 어떤 일도, 역경도, 장애물도, 어려움도 함께 잘 이겨내고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전에 서로 진심으로 원하는 미래가 무엇이고 서로의 꿈이 무엇인지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신뢰를 만들고, 대화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 누구도 한 가정의 사적인 문제에 개입할 수 없고 참견할 수 없다. 한 가정의 일을 그 누구도 대신 선택하고 선택을 요구할 수 없다. 철저하게 부부가 함께 의논해서 인생의 중대사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다. 그 누구도 한 가정의 중대한 선택과 책임에 대한 문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리고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남편과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듣고 싶고 알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내 인생의 가장 큰 과제를 한 단어로 정의했다. 경청! 그리고 내 남편과 내 딸도 나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하나일 것이다. 경청!

나는 자기반성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이기 때문이다. 위에 내가 말한 모든 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고로 나는 다짐한다.


1. 나도 못한 것을 내 딸한테 시키지 않을 것이다.


2. 내 꿈을 내 딸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3. 내가 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딸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4.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고 꿈이 있다면 내가 할 것이지, 내 딸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다.


5. 사회적 통념이나 편견이 정말 맞는 것인지 의문을 갖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내 딸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엄마로서 더 많은 공부를 할 것이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걱정을 걱정으로만 받아들여 감사하게 생각하고, 타인이 나에 대해 뭐라 하던지 여전히 내 가정을 지키고,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고, 여전히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반성한다, 고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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