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성령체험 내지는 거듭났다고도 표현하는.
불같이 임했기 때문에 즉시 방언까지 터졌다.
제대로 터졌는지는 몰라도
스스로 사도바울쯤으로 여길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후 다른 집회 때는 마지막 통성기도 시간에는
몇 성도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까지 해주는 건방지고 기이한 행동까지.
신앙생활이 180도로 달라진 것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령과 처음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구원의 확신이 동시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결혼을 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그 사건이 흐른 지 3~4년쯤 흘렀다.
주일 예배 때 구원의 확신에 대한 내용이었다.
설교 시작할 때만 해도
"나야 당연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니까 구원의 확신쯤이야."
라고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마틴 루터 킹 아님 주의 :
난 정말 전혀 다른 사람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고 이번에 알았다.)의
간증을 해주시면서
이입이 되며 그 분과 동일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간 그분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의'와
로마서 1장 17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의'가 달랐음을.
그간 두렵기만 했던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에서
죄인을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은혜의 '의'의 하나님으로.
"아~ 나도 구원의 확신 까지는 아니었구나?
라고 깨달아지면서,
23살 그 이전 까지도 그 이후도
구원은 믿기만 하면
거저 주시는 걸로 알았는데
'확신' 까지는 아니었음을.
그래서 어떤 목사님이든 설교 중
가끔 하시는,
"애석하게도 여기 계시는 분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없다."라고 표현
하셨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목사도 장로도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
거저는 주셨지만 99.9999999의
순금 수준을 넘어 100으로 꽉 찬 확신이
아닌 이상 구원은 장담이 안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