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머문 생각

민낯을 즐길 수 있는 오두막을 만들자

by 중간착륙


역할에 지친 나를 위한 쉼표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서 남자들은 평소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지만, 전쟁이 나면 모두 전사로 변해 싸움터로 나간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는 적 부족의 여자는 노예로 데려오고, 남자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고 돌아온다.


하지만 마을로 돌아온 후에는 문제가 발생했다. 전사의 역할을 벗지 못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부족의 원로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이 끝난 전사들이 마을에서 약 5km 떨어진 오두막에서 3주간 머물도록 했다. 이 기간에 전사의 가면을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 이후로 마을 내의 문제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사회에서 맡는 역할에 따라 덧씌우는 사회적 인격을 ‘페르소나’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다양한 역할을 요구한다. 자녀, 배우자, 부모, 직장인으로서 각각의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떤 역할은 기쁨을 주지만, 어떤 역할은 버거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가면을 쓰고 성실히 그 임무 수행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그 가면 뒤의 민낯을 마주할 때가 있다. 역할에 지쳐갈 때, 지금 내가 누구인지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 찾아온다. 중년기는 이런 질문이 특히 많이 떠오르는 시기다. 예상치 못한 민낯을 마주하며 당황하기도 하고,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지거나 분노를 표출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역할에 지쳐가고 있을까?
부모의 역할인가? 자녀의 역할인가? 아니면 책임자의 역할일까?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쯤은 버거운 역할에 힘겨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부족의 오두막처럼 스스로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로 돌아가는 시간, ‘누구의 자녀’, ‘누구의 배우자’, ‘누구의 부모’가 아닌 그저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려 애쓰기보다 가끔은 나 자신과의 대화, 셀프 토크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좋다.


물론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다양한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인지하고, 가면을 바꿔 쓰며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면 삶은 훨씬 여유로워질 수 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은 절대 작지 않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가면을 벗고 본래의 나를 들여다보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단단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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