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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름 Jul 04. 2024

셀프 브런치 플레이팅

아름세계 2024년 창간호 ㅣ 신작 에세이 ㅣ 강아름

 브런치 작가가 돼야 한다. 이유를 들자면 들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고, 그래서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퇴근 후, 어떤 주제로 작가 신청을 할 지에 대한 고민만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 것이다.

 

 일단 어머니께 전화한다. 이런 고민을 할 때 주로 어머니와 상의하는 편이다. 어머니도 요즘 글을 쓰려고 하고 있다. 어머니 스스로 학창 시절 글쓰기로 상을 휩쓸었다는 자랑을 자주 하셨고, 그럴 때마다 풋내나는 시골 소녀의 총명함이 눈에서 보이곤 했다. 책을 출판하겠다고 선언한 뒤, 어머니께도 적극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결국, 어머니는 쓰고 싶었던 주제를 떠올리고, 틈만 나면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는 작가의 삶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계획을 어머니와 상의하는 것이 더욱 즐겁다. 아들을 위해 조언하는 어머니가 아닌, 서로의 삶을 위해 의견을 나누는 친구가 필요하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미 어떤 주제를 할지 결정했다는 것이다. 상의는 전화의 명목이고,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고 결정한 주제에 대해 칭찬만 하지도 않고 비판만 하지도 않으면서 적절히 호응해 주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았고, 나름의 결론을 얻고, 현실적인 결정까지 내렸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주제로 선정해야 하고, 그 내용으로 쓰는 글이 독창적이면서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이제 25살인 내가 유일하게 팔아먹을 수 있는 글은 ‘교도소에서 수용자를 상담하는 교도관’에 대한 내용이다. 상담한 내용은 모두 기록해 놓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꽤 많다.      


 그래서, 상담 내용으로 글을 쓰고자 개인정보보호에 관련된 규정, 상담 윤리 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못 쓴다. 이름만 가리고 내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만 삭제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상담 내용 자체가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담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글 써야 하니 허가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수용자를 심리치료 하는 교도관’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나의 성장일지를 쓰는 것이다. 상담 내용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팀에 와서 도전했던 것들, 자격증들을 취득한 과정, 상담하면서 깨달았던 것들 등등을 쓰는 것이다. 제목도 재치 있게 정했다. ‘교도소에 또 아침이 와요’.     

 신나서 조잘조잘 지저귀고, 어머니의 적절한 호응을 기다린다. 그런데, 어머니는 교도관으로 했던 일들을 공개적으로 적다 보면 분명 사고가 날 것이라며 해당 주제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것을 만류한다. 그리고, 책을 쓰고 싶으면, 책을 많이 읽어보라는 어른스러운 잔소리를 읊는다. 짜증이 나지만, 잔소리답게 너무나 맞는 이야기였기에 솔직히 인정하며 말한다.      


 내 이야기로 책을 쓰는 것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맞다. 그리고 책을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책이 잘 안 써지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고 했던 것도, 작가가 되면 누군가 본다는 생각에 매일, 매주 글을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 연습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런치 작가는 이미 글감도 있고 글도 충분히 써본 사람이어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력적인 이야기인 교도관이라도 팔아보려고 한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글쓰기 강의를 듣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책을 쓰면서 언젠간 전문가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하기 싫어서 시작했다간 분명히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재밌는 방법으로 연습해 보고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것이다.     


 토해내듯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쏟아낸다. 내가 짜증을 내는 방식이다. 상대가 한 말을 인정하고, 이미 생각했던 것임을 알리고, 그럼에도 이렇게 결정한 이유를 밝혀서, 상대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 대부분 사람들은 나의 짜증을 듣고 나면 고개를 숙인다. 내 생각을 지지하고 나서,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할 말이 남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너는 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거잖아? 그럼 그냥 순간순간 경험하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적어 봐. 수필을 읽는 독자들은 강아름이라는 사람 자체를 궁금해하는 거야. 그렇다고 네가 너를 설명할 필요는 없어. 순간순간 존재하는 감정과 생각이 결국 강아름이야. 수필은 공부하려고 읽는 게 아니야. 글을 통해 작가와 만나고, 작가를 통해 나와 만나기 위해서지.”     


 귀가 번쩍 뜨인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기 전에 글을 쓰던 방식이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들을 스마트폰에 메모해 왔다. 구글 메모 앱을 쓰고, 생각은 Idea 라벨에, 감정은 Emotion 라벨에 분류해서 적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어떤 강요도 없었지만, 쓸데없이 열심이었던 행동이었다. 그 행동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나를 글로 옮기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결과도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났었지만, 비평의 명목으로 글을 보여주었고, 칭찬하면 기뻐서 날뛰었지만,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는 가식적인 답변만을 남겼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궁금해할까? 항상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난 관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필도 별로 안 읽는다. 작가 자체는 궁금하지 않다. 작가가 쓴 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어떤 생각할 거리를 주거나 감정을 일으키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나는 내가 제일 궁금하고 재밌고 사랑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가 너무 싫어 죽고 싶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래도 어머니의 말을 믿고 싶어진다. 그만큼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과거를 파헤쳐 나라는 존재를 감히 정의하고 싶지 않다. 어떠한 범주도 허용하지 않는 순간을 글로 남기는 것이야말로 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일 지도 모른다. ‘브런치’에 브런치를 담기 위해, 옆집 브런치를 따라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어리석은 혐오일 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예쁘게 플레이팅해보자.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불타는 만큼, 축구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가득하다. 머릿속에선 이미 디발라가 감아차기를 하고 있다. 나란 존재 참 문제다, 문제. 아니야,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래. 게으른 게 아니라 불안한 거야. 유튜브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되새기며, 날뛰는 디발라를 진정시켜 본다. 브런치를 열고, 제목을 쓴다. ‘셀프 브런치 플레이팅’.     


 “카페에서 브런치를 주문하면 빵 한 조각도 굉장히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해 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희는 작가님들의 생각과 상상과 경험을 브런치 안에 아름답게 담아드리고 싶었습니다.” by 브런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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