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평소라면 휴대전화로 유튜브나 보다가 11시쯤이면 잠에 들었겠지만, 오늘은 벌써 새벽 2시를 넘겼다. 엄마는 이미 새근거리고 있지만, 난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잠에 드는 순간, 새로운 엄마가 된 그녀가 악몽에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또다시 그녀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방문 틈으로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가 깨어난 것일까.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었다. 몸을 살며시 비틀어 이불을 걷어내고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안방은 닫혀있었지만,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거세지는 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문손잡이를 살살 내렸다. 처음엔 아빠가 깨어난 엄마를 패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둘 다 알몸인 것을 보고,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섹스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아빠는 그녀 위에서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고 있고, 그녀는 초점을 잃은 채로 신음을 내며 침을 흘리고 있다. 바닥에는 주사기 하나가 던져져 있다. 두 사람의 숨소리는 점점 격렬해졌다.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그것은 그녀 자신으로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아빠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된 그녀의 모습은 시체와 같았다. 그런 그녀와 섹스하며 흥분하는 아빠 때문에 토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엄마가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제야 방문을 닫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역겨운 상황을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내가 열어둔 문틈으로 그들을 보았다. 한 30초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양쪽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밀기 시작했다. 항상 무력하던 엄마의 두 팔엔 힘이 잔뜩 실려 있었고, 너무 당황한 나는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엄마는 기어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엄마가 벌이는 일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나무 의자를 들었다. 이어서 부엌으로 가더니 식탁에 놓인 라이터를 켰다. 의자에 불이 붙자, 안방 문을 열어젖히고 침대에 의자를 그대로 던졌다. 이어서 입고 있던 하얀 잠옷마저 화르르 타올랐고, 당신의 몸마저 침대에 던지며 그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침대에 불이 붙자, 안방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빨리 신고하거나 불을 꺼야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차라리 꿈을 꾸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테이블에 놓인 아빠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두 눈을 감았다. 아빠의 더러운 신음과 극한의 쾌락에 정신을 잃은 그녀,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이 조금씩 옅어졌다.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뷰파인더에 왼쪽 눈을 갖다 댄다. 눈을 뜨니, 그들의 모습이 프레임 안에서 꿈처럼 펼쳐졌다. 항상 당당하던 아빠의 눈에 서린 두려움과 나의 발목을 잡으려는 절박한 손, 그런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엄마, 타오르는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그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악몽이 3년 만에 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임 속에서는 뜨거운 불길도, 산만한 소음도, 추잡한 몸짓도 완벽히 통제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악몽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쾌감마저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섬뜩했다. 아빠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 검게 그을린 잠옷을 입은 엄마가 아빠를 밟고 일어나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렌즈를 위로 올렸고, 엄마의 얼굴을 줌인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이 집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엄마의 입은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불길 속으로 던져버리고 현관문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계단으로 내려갔다. 4층에 살던 아주머니도 막 문밖으로 나온 듯했다. 그 순간, 빌딩 전체에서 화재경보기가 소란하게 울렸다. 화들짝 놀라 얼어 버린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학생! 뭐 하니? 얼른 내려와!」
정신을 차리고 내려가는 동안, 아주머니 뒤로 아저씨가 젖은 수건을 들고나왔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젖은 수건을 하나 쥐여주었고, 아저씨는 남은 수건 하나를 아주머니께 주었다. 아저씨가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아주머니를 따라 몸을 숙이고 코에 수건을 댄 채로 아주머니의 뒤꽁무니만 보며 내려갔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호흡과는 달리, 머리는 점점 편안해졌다. 어떻게든 아주머니가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긴 듯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나른한 행복>이었다. 눈앞이 점점 뿌옇게 바래지더니,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