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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름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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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그냥 둬. 오늘은 내가 갔다 올게. 잠이나 더 자라.」     


 「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냥 두라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겠다니.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아빠다. 나는 항상 저녁 식사를 마치면, 음식물 쓰레기를 즉시 봉투에 넣고 버려야 한다. 매일 오전 청소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3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규칙이다. 민첩한 움직임으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챙겨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았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마자 다가가 귀를 가져다 댔다. 발소리가 옅어지자 조심스럽게 열고 나갔다. 엄마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가야만 했다. 이 집의 바깥에서 그의 <더럽고 추잡하고 산만한> 순간과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 집은 가장 위층이자 5층이다. 우리가 주인이라 꼭대기 층을 쓴다고 아빠가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아래까지 왔다 갔다 하기에 불편하기만 하다. 마지막 계단까지 신중하게 내려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밑으로는 반지하가 있었으나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밖은 이제 막 해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문밖으로 나와 여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코가 타는 듯한 냄새를 맡았다. 코를 막고 주위를 돌아보니, 건물 사이로 허연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잠시 머리를 굴리다 번개처럼 깨우친 나는 재빨리 한층 위로 올라가 몸을 숨겼다. 담배 연기의 잔향이 코에 남아 찔러대는 바람에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순간 입구로 그가 등장했고, 난 기침을 침처럼 삼켰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멎은 후 깜깜했던 지하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여섯 번의 숫자 입력 소리가 들린 후 문이 닫히더니, 다시 지하가 어두워졌다.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지하로 내려갔다. 센서 등이 켜져 환해지자, 바퀴벌레처럼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눈알만 이리저리 굴린다. 방은 2개다. 오른쪽 방문에는 도어락이 있지만, 왼쪽 방문에는 문고리조차 없다. 아빠는 오른쪽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다가가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왼쪽 방문 안쪽에서 세게 부딪힌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뒤로 자빠졌다. 이어서 한 번 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섞여 흐르는 절박한 신음을 통해 누군가 문밖으로 나오려고 자기 몸을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두려웠지만, 일어나야 한다. 구해야 한다. 몸을 일으키자, 꺼졌던 센서 등이 다시 켜지면서 소음도 뚝 끊겼다. 왼쪽 방문에 귀를 기울였으나,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설마…」     


 아빠는 분명 <단 한 사람도 죽인 적 없다>고 단언했다. 적어도 그 말은 믿고 싶었다. 그러나, 발은 저절로 도어락 앞으로 움직였다. 6자리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아빠의 생일은 모르고, 전화번호 뒷자리는 4자리이므로 아니다. 그때, 문득 아빠가 유심히 보던 두 남녀를 떠올렸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 사진에만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는 6자리 숫자가 적혀있었다. <94 12 24>. 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린다. 도어락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일단 신속히 들어갔다. 방에는 컴퓨터와 프린터처럼 생긴 장비, 빈 액자와 사진 몇 장, 그리고 나무 자재와 톱이 놓여 있다. 철로 된 문이 하나 있어서 다가가자, 한 여자의 괴로운 신음이 어렴풋이 들렸다. 자물쇠가 열려있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녹슨 철문에서 소리가 나서 조금만 열고 문틈으로 보았다. 그녀는 목이 밧줄이 걸린 채로 아슬아슬하게 천장에 매달려 있다. 입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으며, 손목과 발목 역시 묶여 있고, 간신히 세운 발가락이 밑에 있는 나무 의자에 닿을락 말락 한다. 뒤로는 불이 켜진 화장실 문이 열려 있고, 아빠가 등을 돌리고 목욕하고 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콜록거리며 눈으로 소리쳤다. 살려달라고. 악몽 속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 어떠한 신의 계시도 읽지 못했지만, 애초에 그딴 건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저 그들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물소리가 그쳤고, 곧 아빠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난 아빠를 때려눕히고 그녀를 구해낼 만큼 강력한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겁에 질려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눈을 떼고 몸을 숨긴 채로 심호흡하고 있는 나는 겁쟁이고 못난이다. 문틈으로 아빠의 말이 새어 나왔다.  

   

 「괴롭지? 조금만 기다려봐. 옷만 입고, 한 잔 줄게. 오늘 너한테 팔았던 것보다 훨씬 더 진한 걸로.」     


 아빠의 들뜬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한껏 몸을 낮추고 오른쪽 눈만 문틈으로 집어넣었다. 아빠는 옷을 다 입고 나서 금고같이 생긴 것을 열더니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에 투명한 액체를 가득 담아 그녀에게 가더니,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그녀는 막힌 입으로 괴성을 지르면서 발버둥 치다, 그만 나무 의자가 쓰러지고 말았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는 발가락과 더욱 조여지는 숨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는 그녀가 정신을 잃자마자 그녀의 다리를 안아 올렸다.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주사기를 하나 더 가져와 팔에 또 꽂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내었고, 아빠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잽싸게 방에서 나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5층까지 단숨에 올라와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후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나무 의자부터 봤으나, 엄마는 예상외로 태연하게 안방에 누워있었다. 잠을 자는 것은 아니고, 눈을 뜬 상태로 누워서 아빠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든 척을 했다. 도대체 난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집에서 편하게 쉬지도, 아빠를 막아서지도, 그녀를 구해내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오지 않는 잠이나 자는 척하고 있다니. 버림받아 마땅하고 죽어야 마땅하다. 흐르는 눈물을 뒤집어쓴 이불로 찍어내고 있었다.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아들아, 벌써 자니? 얼른 나와 봐봐.」    

 

 눈물 자국을 이불로 급히 닦아 내고, 졸려서 눈을 비비는 척하며 나왔다. 아빠가 기절한 그녀를 부축해서 데려왔다. 그녀를 구속하던 밧줄과 테이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뭐해? 도와줘야지. 안방까지 가자.」   

  

 그녀의 왼쪽 팔을 들어 어깨에 메고 안방까지 끌고 갔다. 어쩜 이렇게 말을 잘 들을까.  

  

 「자기야, 오늘은 아들 방에서 같이 자야겠다. 나와봐.」

     

 엄마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힘없이 일어나서 침대에서 비켜났다. 아빠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거야. 오늘 목을 매달고 자살하려고 하는 걸 구해서 데리고 온 건데, 지금은 정신을 잃어서 일단 쉬게 두어야 해. 갈 곳도 없고 불쌍한 사람이니까 이해해라. 너희 엄마도 그런 사람이었어.」     


 「이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당연히 물어야 할 수많은 질문은 모두 두려움에 갇혀버렸다. 어쩌면 난 정말로 아빠의 꿈을 물려받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답했다. 

    

 「글쎄다. 그냥 앞으로는 이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고, 지금 엄마를 아줌마라고 불러. 이제는 그게 역할에 맞는 이름일 테니까.」     


 무슨 소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 채 내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젠 엄마가 아니라 아줌마라니. 왜소한 몸이 오늘따라 한없이 처량해 보인다.   

  

 「엄마, 자자. 엄마가 안쪽 써. 자다가 떨어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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