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6시 27분 25초가 되어서야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26초, 27초, 28초가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녹초가 된 모습으로 나타난 아빠는 거실에 앉아 있는 엄마와 나를 보고 잠깐 눈짓하더니 신발을 벗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맛있는 거 먹었으니까, 오늘은 라면이나 끓여 먹자. 후, 고되다.」
평소라면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엄마, 저녁 먹자>로 이어가거나, 적어도 <네>라고 답하고 엄마를 데리고 나왔겠지만, 오늘은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엄마를 일으켜서 식탁 의자에 앉히고, 나는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털썩 앉았다. 그러나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능숙하게 라면을 끓이고 달걀을 2개 풀더니 식탁 가운데에 냄비째로 툭 내려놓았다.
「그릇 잘 닦아 놨지? 얼른 가져와. 떠서 먹게.」
평온한 표정의 아빠가 너무 얄미웠지만, 배는 고팠기에 그릇과 수저를 챙겨 나눠주었고 아빠가 먼저 라면을 건져 갔다. 아빠도 배가 고팠는지 라면을 바로 흡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 아빠는 나까지 다 먹을 준비가 되고 나서 적당히 하고 싶은 말을 하다가, 가부장다운 교훈으로 마무리하고 밥을 우리와 동시에 먹기 시작했다. 오늘처럼 지친 상태로 들어온 것도 처음이다. 항상 목욕하고 바로 나온 것처럼 뽀얀 모습으로 집에 들어왔다. 고개를 박고 라면을 먹으며 치켜뜬 눈으로 아빠를 계속 관찰했다. 평소에는 중간중간 우리를 보며 맛있는 지도 물어보고,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칭찬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라면에만 시선을 꽂은 채로 먹기만 한다. 적절한 타이밍만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결심했으니까, 이제는 말해야 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오늘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아빠가 면을 빨아들이다 그대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무섭게 화를 내고 싶었는데, 막상 나온 소리는 울음 섞인 투정에 가까웠다. 귀와 목이 모두 새빨개졌다. 말없이 남은 면을 빨아들이는 아빠를 보며, 책상을 짚고 번쩍 일어났다. 그대로 거실로 가서 창문에 붙은 사진을 뜯어서 아빠 앞에 던져 놓으며, 울컥울컥 올라오는 남은 말을 뱉었다.
「그리고 도대체 아빠는 왜 이런 사진들만 찍는 거야? 나, 너무 무섭고 괴로워. 사진 속의 사람들이 매일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단 말이야. 제발 시체 같은 사진들은 다 갖다 버리고, 솔직하게 말해줘. 아빠가 이 사람들 죽이고 찍은 건 아니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사진들을 찍냐고!」
아빠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라면을 간신히 삼키더니, 물 한 모금을 꿀떡 넘긴다. 가증스러운 미소를 은근하게 짓다가, 능청스럽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주며 말했다.
「약속할게. 아빠는 단 한 사람도 죽인 적 없어.」
이어서 눈을 부릅뜨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체 같다니! 오히려 가장 살아있는 순간을 찍는 거야! 인간은 죽어갈 때 가장 살고 싶어 하거든. 마치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부분에서 작동하듯, 죽음과 삶에 대한 욕구 역시 동시에 작동하는 거지. 한 사람이 가장 강렬한 분노와 열정, 슬픔과 희망을 느끼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죽어가는 순간을 봐야 해. 그건 어리다고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야. 나도 너보다 어릴 때 알게 된 거니까. 특히 넌 나를 닮았으니, 보게 된다면 즉시 놓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그 더럽고 추잡하고 산만한 순간을 프레임에 가둬서, 꿈같은 모습으로 재생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어.」
아빠가 엄마를 보더니 턱을 잡고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봐봐. 너희 엄마의 모습을. 정말 찬란하고 눈부시지 않니? 엄마는 스스로 밧줄에 목을 매달아서 죽어가고 있었어. 아빤 그런 엄마를 살려서 이렇게 꿈같은 삶을 살게 해주고 있어.」
아빠가 아귀힘을 풀자, 엄마가 빨개진 턱을 만지작거리며 괜찮은 척 웃어 보인다.
「너도 마찬가지야. 여기에 오기 전을 생각해 봐. 아빠가 없던 세상을 떠올려보라고.」
아빠는 자신의 위압감에 가라앉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빈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아빠가 식탁 위에 던져진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처음 찍은 사진이자, 나에겐 부모 같은 존재야. 이 사람들… 아니, 이 사진 덕분에 아빠는 아직도 꿈속에서 살고 있어. 그건 너와 너희 엄마도 마찬가지지.」
너무 역겨웠다. 또 꿈 이야기를 하며 엄마와 나를 자신이 정해 놓은 프레임 안으로 밀어 넣는 아빠보다, 그 프레임 속에서 빈둥거리며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내가 더 역겨웠다. 아빠는 여전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뒤통수에 달린 눈으로 나의 마음을 읽고서 말했다.
「의미를 찾지 마. 만들지도 말고.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따로 놀던 눈과 마음을 하나의 축에 놓는 거지. 지금은 아빠가 너를 가뒀다고 생각하겠지만, 곧 알게 될 거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지. 넌 결국 나의 꿈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지금의 나처럼 살게 될 거야.」
할 수 있는 남은 말이 없었다. 흘릴 수 있는 남은 눈물이 없었다. 그저 나에게 남은 것은 이 집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