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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름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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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 거실 창에 붙어있는 사진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창문 밖 철제난간에 목이 매달린 남자와 여자가 잔뜩 밀착된 채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는 적어도 30대 후반은 되어 보였지만, 마치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처럼 타오르는 욕정에 젖어 한껏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아래쪽에는 날짜라고 생각되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 집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숫자가 적힌 사진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94 12 24>,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특징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날이 촬영한 날짜라면, 아빠가 거의 내 나이쯤이거나 나보다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그 어린 나이에 두 눈으로 그들을 직접 목격한 아빠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두 남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빠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오늘 오후 공부는 완전히 망쳐버렸다.     


 「하, 죽고 싶다.」     


 생각하기 싫다. 그냥 주어진 일상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고 싶다. 그러나, 다 나 때문이다. 다 나 때문이다. 오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오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강렬하게 키스하는 두 남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 집에 있는 수많은 사진 가운데 가장 뇌쇄적인 사진이니까. 이 집에 사진이 많은 이유는, 아빠가 온종일 밖에서 여기저기로 쏘다니며 사진을 찍고 현상해서 집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빠 말로는 자기가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여러 차례 열었고 사람들도 많이 왔다는데,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빠의 사진엔 두 가지 끔찍한 공통점이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의 사진 속에 등장한 사람은 항상 죽어가고 있고, 제각기 미쳐있다. 안방 침대 위에는 시체처럼 풀린 동공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사람이 있다. 팔은 허공에 휘젓는 중에 찍혀 흔들린 것 같다. 마비가 온 것처럼 제멋대로 구부러진 손가락은 마치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것처럼 간절하게 텅 빈 하늘을 쥐고 있다. 방문에는 깨진 머리 사이로 뇌가 조금 흘러나온 여자를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손에 묻은 피가 여자의 가슴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망치도 피를 흘리고 있다. 거실 창가에 있는 두 남녀가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다. 이외에도 각종 테이블과 벽에 사진이 놓여있는데, 하나같이 음침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러니까 한 10살쯤 되었을 땐, 집안 곳곳에 놓인 사진 때문에 악몽을 거의 매일 꿨다. 전개가 항상 비슷했기 때문에,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왠지 모를 익숙한 공간. 갑자기 튀어나온 팔 하나가 내 발목을 잡아서 깜짝 놀라고, 다리를 흔들어 떨치고 보면, 사진 속에 있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두세 달 정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다 보니,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젠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꼭 듣고 싶었다. 그 후로 종종 악몽을 꿨지만, 귀를 기울여도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동이 귓속으로 들어와 고막에 닿는 느낌이 들긴 했으므로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더욱더 그들의 말뜻을 알아내는 데 집착했다. 반복되는 꿈에는, 그것이 악몽일지라도, <나를 천국의 문으로 데려다 줄 신의 계시>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유튜브 쇼츠에서 청각장애인이 입 모양을 읽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독순술이라는 기술이었다. 이거다 싶어, 수많은 유튜브 영상을 음 소거 상태로 보며 입 모양을 분석했다. 오후에 해야 할 공부는 미뤄둔 채, 매일 최소 5시간씩 연습을 하다 보니, 웬만한 예능을 음 소거 상태로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독순술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한 뒤로 악몽을 꾸기만을 기다렸지만,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진 속 사람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입 모양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에 대한 실망감에 허탈하여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후 실패를 분석하면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왜 악몽을 꾸던 초반부터 독순술을 연습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독순술을 일찍 마스터했다면 어땠을까…>, 분석하면 할수록 나의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렇지 뭐, 이번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또 날려버렸어, 난 잘하는 게 없어, 죽고 싶다…>, 나는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마치 다스 베이더가 포스로 내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꼈다. 가슴의 압박감은 기도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쥐어짰고, 조금씩 주변이 깜깜해졌다. 다스 베이더는 어둠 속에서 나의 공포, 분노, 증오, 슬픔을 원천으로 갈수록 강해졌다. 난 어둠에 잠식당했고, 점점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죽고 싶었지만,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되니 너무 살고 싶어졌다. 사진 속 사람들, 악몽 속에 등장했던 그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들의 두 눈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희망이 서려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의 외면을 걷어내고 내면과 마주했다.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들을 죽인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 순간, 어둠이 걷히고 조금씩 거실의 형태가 나타났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거실 창에 붙은 사진의 등 뒤로 달빛이 내비쳤다.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노오란 보름달이 유난히 밝았다. 모든 별빛과 도시의 불빛이 고개조차 감히 들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슈퍼문’이었다. 황홀감을 느끼고 있는데, 불현듯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너를 끊임없이 배신하고 괴롭게 할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정해준 삶을 살면 돼. 이 집은 너의 꿈이야. 이제는 어떤 것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정말 바깥세상은 고통뿐일까. 난 아무 걱정 없이 이 꿈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나의 하찮은 뇌로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내 뒤에 놓인 과거는 참담한 버려짐의 연속이었고, 앞에 펼쳐져 있는 유일한 미래는 너무나 완벽하게 통제된 일상뿐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시는 이 집에서 감히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오전엔 청소하고, 오후엔 공부하며, 맛있는 저녁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도 벌써 저녁 6시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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