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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름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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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흑흑 흐느끼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먼저 일어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또 주인공의 엄마나 아빠가 죽었나 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갑 티슈 3장을 뽑아서 주며, 옆에 있는 전자시계를 보니 벌써 10시이다. 오후 내내 집이 조용해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10시엔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 엄마와 나는 집에만 있지만, 아빠는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새벽같이 나가서 돌아다니다 저녁 6시 정각만 되면 귀신같이 와서 직접 요리를 해준 후 같이 먹는다. 아빠가 나가 있는 동안 엄마와 나에겐 지켜야 할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매일 집을 원래 상태로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절대 규칙이라, 청소는 엄마 혼자서도 잘하지만, 나도 딱히 할 게 없어 설거지나 분리수거 정도는 도와주곤 한다.     


 「엄마, 벌써 10시야.」

     

 엄마가 무한동력처럼 흐르던 눈물을 티슈로 막아내다가, 10시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란다. 죽은 시체가 살아나듯 번쩍 일어나더니 충전 중인 청소기를 뽑아 든다. 나도 침대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서 어제 먹은 저녁을 닦아 낸다. 오랜만에 먹은 삼겹살의 허연 기름이 그릇 곳곳에 발려있어 난도가 꽤 높은 날이다. 먼저 새 수세미를 3개 꺼낸다. 수세미의 거친 부분에 퐁퐁을 짜서 1차로 닦아내고, 어느 정도 기름이 씻기면 부드러운 부분에 퐁퐁을 짜서 2차로 닦아낸다. 뽀득뽀득하는 소리가 들리면 물로 씻어내고, 그릇을 식기 건조대에 올린다. 그리고, 수세미를 버린다. 기름 묻은 수세미로 다른 그릇을 닦으면, 아무리 수세미를 빨아도 찝찝한 미끈거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세미는 그릇 수에 맞게 필요하다. 수세미가 부족하면 그릇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삼겹살을 먹은 다음 날의 설거지란 위험한 것이다.     


 베란다로 가서 분리수거 통을 들고나온다. 매일 하다 보니, 할 게 별로 없다. 쓰레기봉투까지 들고 나가려고 하다 거실을 보니 엄마가 땀을 흘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잠시 쓰레기들을 내려놓고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목덜미부터 등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갔다. 수건 하나를 꺼내서 거실로 돌아오니, 엄마가 윗옷을 벗고 있다. 끈적하게 젖은 옷을 벗으려고 소매 안으로 팔을 넣고 들어 올리는 순간,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흘러들어온 뜨거운 햇빛이 엄마를 비춘다. 엄마의 얼굴선과 목덜미, 봉긋한 가슴이 뚜렷해진다. 홀린 듯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봐. 도와줄게.」

     

 젖은 옷을 벗으려 낑낑거리는 엄마의 팔을 잡고 말했다. 옷의 아랫부분을 잡아 올리면서 내 손이 엄마의 겨드랑이를 스친다. 아무 말 없이 수건으로 엄마의 땀을 닦는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날갯죽지로 내려오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건 위에 얹어진 손가락 하나하나로 온 신경이 이동했다. 등을 다 닦고 돌라고 손짓하니, 엄마가 저항 없이 돌아앉는다. 쇄골에 고인 땀을 살며시 쓰다듬다가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가슴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마침내 나의 손이 부풀어 오른 엄마의 젖무덤을 지나 젖꼭지에 다다른 순간, 엄마의 신음에 놀라 손을 뗐다. 그제야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후다닥 일어났다. 마치 범죄 현장을 떠나듯, 뻔뻔하고 소란스럽게 쓰레기를 들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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