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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름 Aug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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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일요일 늦은 아침, 일어나자마자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셨다. 즉각 신호가 왔고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았다. 먼저 급한 아이들을 빼냈다. 타오르기 시작한 집을 헌신적인 비데가 세정으로 진정시켰다. 남은 아이들은 더 깊이 빠져있었다. 구하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불길이 거세져 집이 따갑게 타들어 갔다. 나는 영웅답게 고통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임무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그 순간, 툭, 머리 위로 기다란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무릎에 튕겨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기다랗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그것은, 바로 지네였다.     


 난 벌레를 매우 싫어한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벌레가 나타났을 때 해결하는 각자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난 굉장히 침착한 편이다. 절대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일단 이 벌레라는 생명체 역시 설계된 DNA에 따라 움직이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변기 위에 앉아 바닥을 기어다니는 지네를 보며 생각한다. 왼쪽으로 2번, 오른쪽으로 3번. 대부분의 신경을 여전히 엉덩이에 두면서 눈으로만 관찰하되, 절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타났던 벌레가 사라지는 것만큼 참혹한 결말은 없다. 미리 지네의 다음 방향을 예측하여 어두운 곳으로 가려고 하면 그곳을 발로 두드린다. 그렇게 지네를 숨지 못하게 만들면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아이들을 모두 구했고, 변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렇다.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여전히 침착한 냉혈한은 조금씩 지네의 활동 범위를 좁히며 다가간다. 충분히 접근했다고 생각될 때 숨을 멈추고 지네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 지네가 멈추면, 미리 뜯어놓은 두루마리 휴지 4칸 정도를 겹쳐서 지네의 하늘을 덮어버린다. 당황한 지네가 작은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265mm의 거대한 발바닥으로 사뿐히 즈려밟는다. 가장 위쪽에 있는 휴지의 표면으로 퍼런 피가 묻어나오면 발을 뗀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휴지를 조금 더 위에 덮어서, 지네의 사체가 바닥에 남아나지 않도록 꼼꼼하게 바닥을 쓸며 접어 올린다. 바로 변기에 버리고, 휴지 틈으로 튀어나온 다리들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후, 변기 뚜껑을 닫는다. 

    

 내가 벌레를 잡는 과정은 완벽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벌레를 죽이는 순간이다. 지네의 물컹함이 발의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데, 매우 불쾌하다. 다른 물건으로 죽이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2가지 빈틈이 존재한다. 먼저, 벌레를 죽인 흔적이 물건에 남기 때문에, 그 물건을 버릴 것이 아니라면 닦아내야 하는데, 피가 묻기 때문에 쉽게 닦이지 않는다. 완전 범죄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벌레를 누르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벌레가 죽은 것인지 물건을 들어올리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물건의 틈으로 빠져나와 비웃는 벌레를 보며 패배감을 느낄 수는 없다. 결국 나의 시퀀스에서 벌레를 죽이는 순간에 불쾌한 촉각은 완전한 끝을 확신시켜 주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갑자기 괴상한 신음이 들려온다. 그러나 금방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아마 그 의자 위에 올라가 있겠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여지없이 엄마가 나무 의자 위에 올라가 있다. 나무 의자는 아빠가 작업실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작품>으로, 팔걸이나 등받이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두 빼버렸고, 엄마 같은 왜소한 사람이 간신히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원판만이 달려있다. 바퀴는 없지만, 위에 달린 원판은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엄마는 종종 의자 위에 쪼그린 채로 하염없이 돌곤 한다. 그 모습이 마치 피겨스케이팅의 스핀같이 매혹적이어서, 아빠의 작품이 엄마의 스핀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빠는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편하게 앉아서 쉬려는 순간조차 불안하게 만드는 현시대를 표현한 것이라고 뽐내곤 했다. 하긴 나도 똥조차 편하게 못 싸긴 했지. 아빠를 속으로 비웃으며, 울먹거리는 엄마의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엄마. 화장실에 지네가 나와서 잡느라 오래 못 나온 거야.」     


 엄마는 그제야 의자에서 내려와 잠시 훌쩍거리더니, 다시 침대로 가서 이불을 덮었다. 아마도 잠을 더 자다가 어제 못 본 드라마를 볼 것이다. 엄마의 동선은 뻔하다. 먹는 시간엔 식탁에,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아빠가 늦게 집에 올 때는 의자 위에, 그 외의 모든 시간엔 침대에 누워있는다. 나도 아침부터 고생이 많았다. 조금 더 자야겠다. 엄마에게 다가가 옆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엄마가 오른쪽으로 한번 굴러 내 자리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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