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4년 8월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괜찮아요?」
웬 누리끼리한 옷을 입은 아저씨가 물었다. 조금씩 흐릿했던 초점이 돌아오자, 소방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에는 산소호흡기가 끼워져 있었다. 소방관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하더니, 부축해서 나를 일으켰다. 고개를 드니,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괜찮니? 아휴, 이게 무슨 일이래.」
아주머니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방관이 산소호흡기를 벗겨주자,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아주머니의 손에 새까만 것이 묻어났다. 울컥했다. 펑펑 울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읽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많이 놀랐나 보네. 그래, 그래. 이리 와.」
나는 아주머니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어깨에 기대 눈물을 쏟아 냈다. 갓난아기처럼 그 품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스웨터와 따뜻한 볼에 내 온몸을 비비고 싶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로 축축해진 스웨터가 차가워지고 나서야 부끄러워서 따뜻해진 얼굴이 느껴졌다. 아주머니의 품에서 나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옆에는 안쓰러운 표정을 한 아저씨도 서 있었다. 아저씨의 눈을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뒤를 돌아보니, 불타는 빌딩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마치 하늘 전체가 불타는 것만 같았다.
「엄마…」
이제 나는 다시 <갈 곳도 없고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다시 뒤를 돌아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알아주길 바라며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나는 서로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들의 품속으로 들어갈수록, 벌건 하늘이 조금씩 가려졌다.
「보호자분, 아드님 병원 이송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깨어나긴 했지만, 연기를 마시고 기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여서요.」
아까 그 소방관이 동그랗게 뭉쳐있는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래도 될까요? 안 그래도 병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애가 너무 울어서요.」
「네. 저기 타시면 됩니다. 보호자는 한 분만 타시죠.」
「알겠습니다. 저기 얼른 타. 우리 병원 가서 싹 나고 오자. 여보, 당신은 차 끌고 와요.」
구급차에 올라타는 기분이 이렇게 좋을지는 몰랐다. 이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만으로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아드님>이라니… 구급차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괜히 아주머니를 몇 번 올려다봤다. 내가 걱정되는지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눈이 마주쳤고, 아주머니는 웃으며 괜찮을 거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연스레 아주머니의 팔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타오르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웃고 있다.
「감사합니다.」
눈을 감은 채로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답했다.
「나도 고마워. 네 덕분에 오랜만에 엄마 노릇 해본다. 이게 얼마 만인지…」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땐, 아주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 아주머니는 괜히 고개를 들었다가 스웨터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는 왠지 쑥스러워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막상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들어가니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피를 뽑았다. 주사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 하다가, 더 아플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저씨도 어느새 와 있었다. 생각보다 참을만했다. 이후로 숨을 참고 촬영 같은 것을 몇 번 했다.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와서 말했다.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그래도 세 분 다 사고가 있었으니 하루 이틀은 안정 취하시고 문제 있으면 병원 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아주머니가 이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보, 어머님께 연락드려봤어?」
「응. 말씀드렸어.」
「애야, 우리랑 같이 가도 괜찮니?」
「네.」
「혹시 부모님께 연락이 온 건 없니? 5층에서 불이 난 것 같던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해 보았다. 연락이 왔을 리가 없다. 괜히 액정만 만지작거리다 말한다.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 소방관 아저씨들이 구해주실 거야. 어머님 댁에서 지내면서 연락 기다려보자.」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만약에 아빠가 살아있다면, 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불쌍한 그녀와 엄마는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아저씨의 차로 이동했다. 숙인 얼굴 위쪽으로 은은한 빛이 닿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썹 모양의 달은 가냘프고 애처로웠지만, 사그라든 달빛이 비워둔 어둠엔 별빛들이 한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별들의 지붕 아래에 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춰 서자,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나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가 놀라며 말했다.
「이야, 오늘 낮에 구름 한 점 없더니 별이 쏟아지네.」
아주머니가 호응했다.
「어머, 정말이네.」
어둠이 내려앉은 텅 빈 주차장에서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의 얼굴에는 별빛이 어려 있었다. 고개를 내리자,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수줍어진 나는 걸어가는 아주머니를 따라 아저씨의 차로 이동했다. 아저씨의 차 뒷자리에는 아기만이 앉을 수 있을 법한 작은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아, 그걸 아직 못 치웠네. 그 옆에 앉아서 갈래? 안전벨트 매고.」
「네.」
안전벨트를 매고 등을 기댔다. 푹신했다. 그제야 모든 피곤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소곤소곤 대화하고 있었다.
「우리 애도 지금이면 저 정도 컸을 것 같지?」
「그렇겠지. 참, 얌전한 게 똑 닮았네.」
「그러니까. 부모님은 괜찮으시려나. 주인 세대였지?」
「맞아. 괜찮을 거야. 집에 가면 소방서에 전화라도 해보자.」
「그래, 그러자. 그래도 별은 꼭 봐야겠어. 아까 보니까 진짜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런가? 쉬고 싶어 할 것 같기도 해서… 근처니까 일단 가보자 그럼.」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들의 소곤거림이 계속 내 귀에 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다 멈춘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아저씨가 말했다.
「일어났니? 괜찮으면 별 보러 갈래?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 높진 않아도 아까보다는 더 잘 보일 거야.」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번도 더 끄덕일 수 있었다. 다행히 두세 번 끄덕이자,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웃으며 가자고 하셨다. 길은 완만했고, 산이라기보단 언덕에 가까웠다. 아저씨가 물었다.
「애야, 너 이름이 뭐니?」
아주머니가 호응하며 말했다.
「참,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구나.」
「저는…」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얼마 만에 불러보는 것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태오예요.」
「태오, 예쁜 이름이다. 부모님이 잘 지어주셨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나니, 궁금해졌다. 그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이름을 지어줄지 고민했을까. 적어도 이름을 지어줄 때만큼은 내가 소중했을까.
언덕 위에 올라가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지 않은 흔한 마을 뒷산일 뿐이지만, 쏟아지는 별빛 덕분에 땅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기분이었다. 아저씨가 물었다.
「태오야, 더 가까이서 볼래?」
동그래진 눈으로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리 와. 너 정도는 가뿐하지. 이 아줌마라면 모를까.」
아저씨는 장난스럽게 째려보는 아주머니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를 번쩍 들었다. 아저씨의 어깨에 앉아 밤하늘을 보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 갔다. 나는 온 별을 다 껴안을 듯이 팔을 힘껏 벌렸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손이 허리에 닿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젠 눈을 감아도, 별빛이 가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