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5년 2월호 ㅣ 연작 에세이 ㅣ 강아름
학원에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선다.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2013년, 중학생이었던 나에겐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압박감이 몰려온다. 가슴에서 기도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쥐어짠다. 생각은 이미 멈춰버렸고, 감정들만이 소용돌이친다. 이제는 분노, 슬픔, 불안 등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내 안에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며 나를 걸레처럼 쥐어짜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용돌이는 빛을 다 삼켜버렸고 처음으로 흑암과 마주했다. 너무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호소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날도 밝고 사람도 많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갓난아기처럼 울었다. 학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프다고 했다. 아이의 말소리 뒤에 숨은 울음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대답하지 못하고 울었다. 일단 학원으로 올라오라는 말씀에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학원에 가던 그날 아침처럼, 어렸을 적 기억들이 모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초등학생 때의 반짝거리는 총기와 흘러넘치는 자신감을 꽤 오랫동안 되찾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한 세기가 바뀌기 직전 1999년,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 부부셨다. 이모와 이모부가 대신 키워주셨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매년 전학을 다녔다. 1학년은 이모가 사시는 청주에서, 2학년은 부모님이 사시던 서울에서, 3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이사 간 일산서구에서, 중학생 때부터는 일산동구에서 학교를 나왔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매년 전학을 간 건데, 그래서 4학년 올라갈 때 교실로 안 가고 교무실로 갔던 귀여운 일화도 있다. 전학을 가면 교장선생님을 만나 인사하고 지정된 반으로 이동했었기에 새 학기에 교실로 바로 갈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거의 매년 반장을 할 정도로 씩씩하게 생활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합창부, 밴드부 보컬 등을 하며 여학생들끼리 진행된 인기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이 사건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기를 누릴 기회란 걸 그때도 알았다면 더욱 맘껏 즐겼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여러 꿈을 꾸었지만, 하나만 고르자면 경찰이었다. 현실감 없던 나는 감히 경찰청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었던 꿈이고 중학생 때까지도 유지되었던 꿈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기특하셨는지, 당시 일산경찰서(2016년에 일산서부경찰서로 분리되며 일산동구경찰서가 되었다) 홈페이지에 있는 서장과의 대화에 글을 남겼다. 서장님은 글을 보고 감동하여 아버지께 연락하였고 만나기로 약속을 잡으셨다. 나는 좋았다기보단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인터뷰를 한다고 궁금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서 질문지도 만들어서 갔었다. 서장님은 온화하게 맞아 주셨고 경찰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등 진학과 관련된 정보와 경찰이 된 후 진로에 관련된 정보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게다가, 경기지방경찰청(2016년에 북부와 남부로 분리되었다)에서 일하셨던 경력이 있으셔서, 경찰청을 친구들과 견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경험들을 부품으로 삼아, 하나의 레이싱카로 조립하셨다. 너무 멀리만 존재하는 아들의 꿈을 구체화 시켜주기 위해, 당시 전국에서 경찰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였던 한일고등학교를 목표로 잡아주셨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 가장 완벽한 목표였다. 게다가 동기가 부여된 아들이 꿈으로 향하는 길을 도중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찰청장이라고 크게 써서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최상급의 미케닉(Mechanic)을 보유한 드라이버로서, 시동을 걸고 출발만 하면 될 정도로 모든 부품들의 정비가 완전무결했다. 출발하고 한바퀴만에 모든 친구들을 제치고 전교 1등을 하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고, 운동은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체력시간 수행평가는 만점이 나올 정도로 성실하게 준비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줄넘기하고, 수업 시간에는 절대 딴짓하지 않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는 책을 읽었다. 게임을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을 지켰다. 어머니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오늘부터 해나가야 할 것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날이 있더라도 그 주나 그달 안에는 해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혼돈이 무엇인지 몰랐고, 노력하기만 하면 꿈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척척 놓아졌다. 성취의 경험들은 삶의 질서로 정립되어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다. ‘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장밋빛 미래를 현재로 계속 당겨왔고,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은 긍정적인 착각을 하게 했다.
나는 이때 이미 경찰청장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이후에 모든 동기를 상실하고 갓난아기가 되어버린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