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5년 2월호 ㅣ 신작 에세이 ㅣ 강현구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지 고민한다. 그러나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인 ‘잘’이 명확하지 않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에도 불명확성이 존재한다. 신체적 건강인지, 정신적 건강인지, 어느 정도의 운동을 해야 건강한 건지 알 수 없다. 결국 개인차가 존재하고 각자가 느끼는 건강한 삶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잘 사는 것, 좋은 삶이 무엇인지 질문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삶을 어떻게 해야 내가 잘살고 있다고, 좋은 삶이라고 느낄지를 질문해야 한다. 좋은 삶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이고,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오히려 그래서 좋은 삶은 내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 흔한 표현으로 살맛 나게 만드는 것을 찾는 것은 왜 중요할까? 우리가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구에 대한 탐색과 추론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면, 어느 순간 인생의 무력감을 느끼고 현실의 늪에 빠져 그저 삶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여기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원래 인생은 무상하다.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인데,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틀을 사는 하루살이나, 100년을 사는 인간이나 그 크기만 비교하면, 우주의 시간으로 따지기엔 너무 짧은 기간을 살고 간다.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살다가 중반기에 들어서면 회의감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고, 나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스스로 선택한 삶인데도 만족스럽지 않아 한다. 대부분이 사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며 결정하게 된다. 꼭두각시 같은 삶은 결국,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현실만을 남겨 놓는다.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해서 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들을 지탱해 주는 가족과 같은 무언가를 그들에게서 빼앗아 간다면, 그들은 즉시 삶의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욕구 탐색과 분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의 부모 세대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 다름 아닌 욕구 탐색이다. MZ세대들의 특징은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스펙과 이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매력적으로 브랜딩하여 특색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MBTI 같은 성격검사나 퍼스널컬러 등이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MZ세대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부모 세대들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나?’
자녀들이 취업하는 등 삶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이 했던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을 되돌아보며 욕구를 탐색하기 시작하고, 늦게라도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기 시작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여기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 선례들은 계속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의미 부여들이 결국 욕구이고, 욕구는 무시하고 거부하여 채워지지 않으면 계속 말을 거는 존재이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도 언젠가는 욕구와 소통하게 되어 있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과 같다. 물리적인 움직임이든 정신적인 변화든 모든 살아감에는 움직임이 동반된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한 단어로 ‘동기’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삶의 동기를 찾아 내면 된다. 우리는 동물이 ‘본능’적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동물이니까 그러면 본능을 분석하면 되는 것일까? 본능은 분석할 여지가 없이 존재하는 사실이고 발견의 영역이다. 본능과 ‘욕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본능은 ‘유전자’이고, 욕구는 ‘인간의 뇌’이다. 본능의 사전적 의미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행동, 감정, 충동이다. 그러나 감정과 충동 역시 행동이다. 일단 감정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비춰 현 신체 상태, 생리적 상태의 피드백에 대해 뇌가 내놓는 최고의 순간적 해석이고 언어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본능이 무엇인지 추측하려고 언어 이전의 시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감정보다는 충동이 더 적합할 것이다. 즉, 진화적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신체적, 생리적 상태가 나타나면 특정한 충동을 느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즉각 특정한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행동이 생존에 유리했다면, 더 많이 유전되었을 것이다. 결국, 선천적인 감정과 충동 역시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이다. 모든 인간은 배고프면 먹고 싶고,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자고 싶다. 따라서 본능은 진화에 유리하여 살아남은 유전자들의 메커니즘이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는 우리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딱 2가지라고 말한다. ‘유전자와 밈’이다. 밈(meme)은 유전자와 전혀 관련 없는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모든 것, 즉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전달은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니지만 인간만이 이것을 통한 진화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언어, 의복, 음식, 의식, 예술, 기술 등은 유전적 진화와 같은 양식으로 진화하는데 그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밈이 퍼져나가는 방식은 ‘뇌에서 뇌로의 모방’이다. 밈 역시 생존과 적응에 유리할수록 우리의 뇌에 오래 남아있는다. 이 밈들은 쉽게 말해 ‘선례의 집합’이다. 우리의 뇌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이 선례들을 따라 행동하면서도 끊임없이 재창조한다. 뇌가 가진 상상력은 어떤 제한도 뛰어넘을 수 있고, 어떤 밈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뇌’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그리고 욕구란 본능조차 거역할 수 있는 위대한 ‘의미 부여’이다. 욕구란 유전과 관련 없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부여한 의미이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나뉜다. 그래서 우리는 욕구를 탐색하고 분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삶의 동기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욕구를 일차적(생리적) 욕구와 이차적(문화적) 욕구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욕구는 당연히 이차적 욕구이며, 사실 욕구는 뇌의 해석 결과이고 뇌가 가진 상상력으로 인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동적인 의미를 가지기에 분류가 무의미하다.]
지금까지는 보편적인 이야기였다면 욕구 탐색 단계부터는 개인마다 그 논리와 방법이 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젠 내가 욕구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겪으며 얻은 ‘좋은 삶’의 시스템인 ‘Camping System’을 설명할 것이고 이는 매우 사적인 통찰이다. 다만, 욕구를 분석하는 등의 과정을 읽고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한 편의 영화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Soul’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였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상은 무엇인가?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를 조절하는 내일의 희망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가장 강조하는 Spark는 결국 무엇인가?’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여러 질문만 스스로 던져놓았지만, 첫 직장 생활에의 적응, 대인 관계의 회복, 진솔한 대화의 기쁨과 방법 탐색, 목표를 향한 자기 계발 등을 1년 동안 해나가며 쌓인 경험과 생각들로 차차 스스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Camping System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Spark, Blaze, Firewood & Tent(환경)이다.
첫째, Spark는 삶에 대한 열정이다. 특정한 것에 불꽃이 튀겨서 방금 막 타오르는 기운 같은 것이다. 우리의 뇌는 기존에 존재하는 선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음에 또 하고 싶다는 ‘선택’을 하거나,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를 한다. 선택을 하려고 하면 선호를 만들어내고, 거부를 하려고 하면 불호를 만들어낸다. 즉, 내가 특정한 것을 경험할 때의 상황, 배경, 습득한 내용, 관계 등등에 따라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 의미에 따라 선택이나 거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을 하면 선호를 만들어 내고, 이 선호가 바로 ‘욕구’이다. 따라서 Spark는 방금 막 타오르게 된 강력한 욕구이다. Spark는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경험이 쌓일수록, 즉 input이 많아야 찾기 쉽다. 괜히 성공한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는 결국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무작정 도전하기가 난감한 사람은 욕구라는 것을 파악하려고 하기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목표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목표라는 것도 분명 내가 어떤 경험을 통해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욕구의 산물이므로, 내가 왜 이 목표를 가졌는가를 기억 흔적을 따라 추적하다 보면 욕구의 단계로 내려오게 되고, 1가지 목표에는 다양한 욕구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보기 전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성향상 죄책감을 심하게 느꼈고 도움을 받는데도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이 높았다. 따라서, 현실적이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공무원을 선택했고, 나름 하고 싶은 것도 해볼 수 있는 교정직을 선택했다. 취업 이후에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거나 교수님과 친구를 만나는 등 경험을 해보긴 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목표를 가져왔었기에 그 목표들을 내가 왜 가졌을지 분석하는 것에 집중했고, 경험과 분석을 통합하여 욕구를 탐색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1. 지적 욕구(심리, 범죄 분야)
: 인간 행동의 동기 파악을 통한 소통, 소통을 통한 인간 그 자체의 이해, 이해를 통한 치료, 치료를 통한 변화
- 학위 따기 → 학사, 석사
- 이론 공부 → 독서, 강의, 자격증 취득
- 실습 활용 → 직장에서의 적용, 실험과 자료 분석을 통한 논문 작성, 관련 과로 이동
2. 통제 욕구(계획, 정리, 분석 선호)
: 나의 세계관(생각, 관점 등), 외부 정보(지식, 신호 등)를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분석
- 빅데이터 분석 능력 갖추기 → 유튜브 커리큘럼
- 노트 필기 디지털화 → notion, keep
- 일기 작성 → 오늘의 경험을 정돈, 의미 부여하기
3. 연결 욕구
: 나의 생각, 능력, 모습을 외부에 표현하고 공유하여, 나를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과 연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
- 취미 개발을 통한 연결 → 사진 인스타, 노래 작곡, 트래킹 일지
- 나에게 맞는 모임은 유지 + 발전 위해 노력 → 독서모임
- 스타일 형성 → 아이비리그룩, 낮고 변동이 적은 설득력 있는 어조, 70kg 이하의 잔 근육질 몸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 자존감 높여서 타인의 인정 없이도 자아 긍정하기(낮은 자존감이 관계 차단이나 관계 의존의 시발점이기에) → 기준이 낮은 외적인 것에 집중하여 나를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기
처음에는 “인간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을 이해해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나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가진 지식을 곧잘 정리하고 분석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능력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지적인 대화를 즐긴다.”처럼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수많은 욕구들을 찾아내서 나열했다. 여기서부터는 욕구 분석을 시작했다. 크게 3가지 욕구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각각 한 줄로 알기 쉽게 정리했고, 다시 한 단어로 정리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해낸 것도 있고, 하고 있는 것도 있고, 바뀐 것도 있는데, 실현 방안 단계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욕구를 채우기 위한 계획일 뿐이므로 시행착오를 통해 수정해 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므로, 욕구 탐색에 제일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욕구 탐색 과정은 이전에 내가 했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지금까지 내가 확실히 인식한 욕구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살아가면서 특정한 분야에 욕구가 생길 때마다 추가하고 더 이상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 욕구를 삭제하는 것 등의 전체를 아우른다. 그리고 매슬로우의 동기 부여 이론을 기준으로 성욕, 수면욕, 식욕 같은 생리적 욕구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안전 욕구는 욕구 탐색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욕구는 어떤 변화를 유도하거나 계기가 되기 어려운 단지 채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이다. 따라서 우리가 찾으려는 ‘동기’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Blaze는 모든 욕구들을 탄생시킨 기본욕구이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다. Flame보다는 빛의 의미가 강한 Blaze는 수많은 불꽃이 하나로 크게 타오르며 눈부시게 빛나는 기운 같은 것이다. 욕구들이 향하는 하나의 지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모든 욕구를 포괄하는 하나의 기본 욕구를 찾아낼 수 있다. 욕구들을 찾아서 분석했고 세부 계획까지 세웠는데 굳이 왜 욕구들이 향하는 곳을 찾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욕구의 핵심은 모든 욕구들을 포괄하여 정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즉 희망이라는 것에 있다. 희망은 ‘나침반’이다. 각자 다른 욕구들을 계획에 따라 충족해 나가다가도 더 이상 욕구가 안 생기거나, 단순히 일상에 지쳐서 번아웃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로 해당 욕구를 억누르고 관련 계획을 그냥 포기해버리면,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에 무력해지거나 욕구 탐색 자체에 의문을 품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는 등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그럴 때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옳은 방향이었는지,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방향으로 뻗어있는 길인지 확인해 줄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나침반처럼 항상 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 희망이고 그래서 희망은 모든 걸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추상적이어야 한다. 희망 그 자체가 주는 의미에서 우리가 열정을 다시 얻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희망이 추상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힘들 때마다 희망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라는 문제가 발생하면 A′라는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B라는 문제가 발생하면 B′라는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희망을 찾으려면 input보다는 자신이 부여한 의미들이 향하는 방향을 충분히 추론하면서 '발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선 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거나 너무 꾸며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원래 인간의 마음은 평평하며 지금 순간의 경험을 해석하고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즉흥시인이다. 그 상상력이 우리가 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여기에선 우리를 살아가게 만들고, 살맛 나게 만든다.
<기본욕구>
“죽기 전까지 시선을 하늘에 두고 싶다.”
의미 : 삶에서 발은 땅에 두고 걸을 수밖에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처럼 현실의 벽 때문에 고개까지 숙이고 땅만 보며 걷고 싶진 않다. 죽기 전까지 미성숙한 부분에 대해 욕구를 느끼며 매일 조금씩 채워나가는 삶, 즉 시선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삶을 살며 언젠가 높은 산 위에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기본욕구는 방향성이고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이미 욕구 분석 단계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급하게 생각해 낼 필요가 없고 그러려고 할수록 수정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처음엔 추측에 가깝게 한 번 시도해 보고 천천히 계획을 실천해 나가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한 번씩 그 의미를 추가해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input을 늘리면 몰랐던 욕구를 다양하게 탐색할 수 있고, 욕구를 많이 알고 있을수록 그 욕구들이 향하는 방향을 infer(추론)하고 invent(발명)하는 것을 쉽게 만들어준다. 욕구를 2개만 알 때는 2개가 전혀 다른 욕구 같지만, 서너 개만 돼도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인이 기본 욕구를 도저히 못 찾겠다면, 다급할 필요 없이 이미 세운 계획을 실천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더 충분한 욕구 탐색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지금까지 찾은 Spark와 Blaze를 상징화한 것이다.
셋째, Firewood & Tent는 애써 만든 불을 지켜줄 환경이다. 열정이 생기고 희망이 있으면, 당장 내 눈앞에 주어진 시간, 공간, 현실적 상황 등 모든 환경이 정말 소중해진다. 오늘이 없으면, 일상이 무너지면,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해 나가기 어렵고 내일을 희망할 수 없게 된다. 환경이 소중하다는 감정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환경을 잘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욕구와 기본욕구를 찾는 것이 제일 핵심인 것은 사실이나, 환경에 대한 내 생각을 읽어보며 참고가 되길 바란다.
환경은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다. 불을 애써 만들었다면, 불을 지피는 환경(Firewood)과 불을 지키는 환경(Tent)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불을 지피는 Firewood는 일상이고, 불을 지키는 Tent는 직업이다. 이제 이 2가지를 설명하겠다.
찾아낸 열정과 희망에 계속해서 불을 지피기 위해선 ‘오늘을 산다’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기본욕구라는 건 매우 크고 깊은 욕구이기에 당장 충족해 낼 수 없다. 그래서 희망하는 내 모습만을 바라보고 일상을 살다 보면 미래의 나와 현재 나의 간극에만 집중하게 되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지쳐버린다. ‘오늘을 산다’라는 개념에는 두 가지 핵심이 동시에 작용한다. 바로 Forget과 Zoom이다. 일단, 일차적인 기본욕구 탐색이 끝나고 나면, 그것을 잊는다(Forget). 초점을 미래에서 현재로 당긴다(Zoom in). 오늘 내가 얻은 모든 것들에, 똑같은 일상일 수 있지만 달라진 나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고 그저 나에게 의미가 있으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늘은 허무한 인생과 똑같은 일상에서도 살아갈 맛이 나게 해주는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 에너지마저 고갈되고 일상에 지쳐 번아웃 되기도 한다. 이때의 문제는 위에도 말했지만, 욕구 탐색 자체에 의문을 품고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럴 때는 살아가던 오늘에서 초점을 과거부터 미래까지 한눈에 보일 만큼 뒤로 당긴다(Zoom out). 열정이 넘쳤던 시작, 지금까지 살아온 오늘들의 의미, 꼭 이루고 싶은 희망까지 한 눈에 보일 정도가 되면 멈춰서서 그 궤적을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추적 해나가며 정돈할 것이 있다면 정돈한 후 에너지가 충전되면 다시 현재로 초점을 당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되새길 때 전체적인 상태의 변화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껏 욕구 단계까지 내려서 파악해 놓고, 비교할 때 업적, 성과, 성취도 등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비교하면 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성취는 ‘나’라는 존재를 제외하고 목적에 필요한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을 얻거나 이뤄내는 것이라면, 성장(성숙)은 ‘나’라는 존재를 기반으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파악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따라 그것이 되기 위해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성취하기를 원했다면, 욕구 분석 같은 것은 전혀 할 필요가 없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성취를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정체성이 없는 성공은 결국 또 다른 갈증만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목표 달성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욕구 충족을 하려는 것이다. 목표 달성 과정에선 당연하거나 쓸데없던 것들이 성장(성숙) 과정에선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어 가는 소중한 것들일 수 있다.
이 과정을 상징화할 때 장작(Firewood)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장작이 기본적으로 불을 지피고 지핀 불을 유지해 주는 땔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작을 만들기 위해선 ‘커다란 나무’를 ‘나에게 필요한 한 토막’으로 잘라야 한다. 나는 꼭 이 행위가 스스로 오늘 하루(커다란 나무)에 의미를 부여(나에게 필요한 한 토막으로 다듬기)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느껴졌고, 실제로 내가 일상을 살 때도 이를 적용하여 오늘은 어떻게 이 나무를 다듬어볼지 고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작 하나를 매일 밤, 불 속으로 던지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마치 삶 전체가 하나의 캠핑처럼 느껴지고 즐거우면서도 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때 느낀 감정을 토대로 시스템의 제목을 ‘Camping System’이라고 지었다.
남은 건 하나, 껍데기(Tent)이다. 껍데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도가 떨어지고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하다. 바로 직업이다. 불을 지피고 장작을 아무리 태운다고 해도 그대로 두면 외부 환경에 의해 훼손되기 쉬워진다. 외부 환경이란, 국가, 체제, 사회 같은 것이다. 국제 미아이거나 난민이라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최소한의 돈도 없다면, 당연히 일상은 유지되기 어렵고, 욕구를 충족할 여유는 사라진다. 그리고 욕구 충족은 그와 부합하는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훨씬 쉽게 가능한 때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 ‘현실과 성과’라는 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빼놓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욕구 탐색과 일상 유지 과정에서는 오히려 그것들이 방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과 성과를 고려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면, 불안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불안정, 주변 사람들과 시공간적 조건들의 압박 등 불안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항상 시선은 하늘에 두더라도 발은 땅에 두어야 하는 법이다. 불안이 심해지면, 아무리 불을 지펴도 비가 오면 불이 꺼지듯이, 일상이 무너지거나 욕구 탐색 자체에 의문을 품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직업은 필요하고 직업을 선택할 때는 다음 3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 스스로 잘할 자신이 있고 성과까지 얻어낼 수 있는 일인가
-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인가
첫 번째,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는 도전해 보면 알 수 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욕구 탐색을 위해선 input이 많아야 하고 많은 도전을 해보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도전을 하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데, 그 경계들에서 자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선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자신을 제한하는 것과 내가 현재 어느 정도까지 실현할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전에 실패했던 것 자체에 주목하여 자기 능력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제한하는데, 사실 그 실패를 겪으며 분명 성장했을 것이고 내가 어느 정도에 와있는지 돌아볼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덴젤 워싱턴이 ‘Fall Foward’라는 주제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진행한 명연설이 있다. 그는 실패에 대한 자신의 3가지 관점을 소개한다.
“모든 사람은 어느 시점에선 실패할 것이다. 만약 실패하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때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 있어서 실패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도전하는 자에게 실패는 당연한 것이고, 실패를 통해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히 도전을 통해, 그리고 실패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찾을 수 있고, 욕구의 방향성도 추론할 수 있으며, 현재 내가 어느 정도에 위치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두 번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는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보거나 들어본 문제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욕구를 채워나가는 데 필요한 여유를 얻기 위해서 직업을 찾는 것이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적절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를 빼앗아 간다. 직장에 적응하느라, 제시간에 하지 못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빼앗길 것이고, 스스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하락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은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같이 느껴지게 하고 힘들게 찾아낸 욕구들을 다 무시하고 현실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세 번째, 그런데도 온전히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몰입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1%라도 내가 원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전혀 다른 직업을 단지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해서 선택하면, 분명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떠올리며 직업을 변경하거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꾹 참고 다니다가 퇴사하고 나서야 좋아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잘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야 힘들어도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내가 직업을 선택했던 과정을 하나의 예시로 소개할 것이고 참고가 되길 바란다.
나는 안정적인 성향이고,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무원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직업 선호도 검사 등을 해보아도 1번으로 나오는 것이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 되려면 통과해야 하는 시험 역시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현실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학창 시절부터 분명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항상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만큼 반사회적인 행동에 관해서도 관심이 깊었다. 그러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The Psychology of Evil”이라는 Ted 강의를 보고 인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범죄자를 직접 현장에서 만나면서 그들이 가진 특징이나 행동을 파악할 수 있고, 그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교정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최근 정부에서 교도소 내외에서 범죄자에 대한 심리치료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원하는 보직을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직업을 선택한 후에 주의할 점은 직업은 껍데기일 뿐이지 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삶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불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다. 직업이 불을 지키지 못하고 나를 망가뜨리면 언제든지 나와 맞는 다른 껍데기를 찾아가면 된다. 실제로 직업이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학창 시절에 우리의 불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지켜주셨다. 그러나, 사회로 던져진 청년에겐 더 이상 그런 보호막이 주어지지 않고,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제까지와 다른 주체적인 보호막을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가 직접 찾아낸 보호막이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다시 찾아내면 된다. 아래의 그림은 지금까지 소개한 ‘Camping System’ 전체를 상징화한 것이다.
자신에 대해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내서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셀프 브랜딩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자신을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성공하는 데 이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공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자신을 이해하하고자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솔직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타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꾸며 내는 데 집착하게 되고 자기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좋은 삶의 기준은 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결정한 인생을 사는 것을 좋은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잠시 현실과 성과는 내려놓고, 온전히 나의 욕구에만 집중해 보자. 내 욕구들은 항상 말을 걸고 있었는데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자. 욕구 탐색을 진솔하게 해내야지만, 진짜 나의 특색을 찾을 수 있고, 그런 인재를 사회에서 원한다.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살맛 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모든 욕구 탐색 과정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일단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두가 다 다를 수 있다. 다만 내가 소개한 ‘Camping System’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