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야수 2025년 창간호 ㅣ 단편 소설 ㅣ 강아름
한마디로 고급스러운 집이다. 천장에는 그럴듯한 샹들리에가, 브라운 계열의 기다란 책상에는 번잡한 문양의 은촛대가 불을 밝히고 있다. 반짝이는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숙녀와 점잖게 넥타이를 맨 신사들의 고상한 웃음소리와 나이프와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곳을 울리고 있다. 그가 도착했다. 마치 환영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그도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악수한다. 한두 번 위아래로 흔들었다 얼른 놓는다.
"파티의 분위기가 너무 멋지네요."
그가 괜한 칭찬을 건네며 자리로 이동한다.
"별말씀을. 환영합니다. 덕분에 파티가 완성되었네요."
나도 기름진 여유를 뽐내며 가볍게 받아친다.
자리에 앉으며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지겨운 안정감.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으면서도 그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스스로가 역겹다. 포도주를 홀짝이며 목구멍에 걸려있던 대화를 삼킨다. 스테이크를 하나 덜어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조심스레 썰어 본다. 실망스러운 첫입.
'겉만 번지르르하군. 요리사를 바꿔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꾸준히 소의 조각을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살피다 꽤 남은 포도주를 게걸스레 털어 마신다. 주량이 약한 사람도 가끔 취하고 싶을 때는 있는 법이다. 정말 좋을 때, 혹은 너무 괴로울 때. 입을 닦아내고 일어나려는 찰나,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서재가 참 멋지던데… 가서 차 한잔 괜찮을까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고개를 끄덕인 후 잠잠히 그를 따라 서재로 이동한다. 그가 집주인인 것만 같다. 자리에 앉아 평소보다 더 거만하게 손짓한다. 가정부가 차를 내온다. 그는 서재를 둘러 보고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 내가 차를 따라주며 정적을 깬다.
"전역하고 한번은 그녀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를 말하는 겁니다. 소식을 들었거든요. 부산에서 몸을 판다는."
그가 천천히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든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내 잔을 채우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한다.
“화가 났고, 동시에 겁이 났습니다. 내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이유가 망가질까 봐. 혹시 아직도 아버지 곁에 붙어 있을까 봐.”
찻잔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손이 조금 떨린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사창가 골목부터 뒤졌습니다. 밤에 불 켜진 간판들, 유리문 안쪽 얼굴들.”
“하나하나 다 봤습니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닮은 뒷모습이 있을까 봐.”
“익숙한 조폭들도 보이더군요. 처음엔 말로 물었죠. 없다고 하면… 팼습니다. 어린 시절 나약하게 당하던 저와 어머니가 떠올랐거든요."
씁쓸하게 웃는다. 이를 꽉 깨물고.
“어떤 날은 새벽까지 돌아다니다가 길가에 주저앉았습니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벽을 몇 번이나 쳤는지 모릅니다. 손이 터져도 상관없었어요. 아픈 게 있어야 정신이 붙어 있으니까.”
잠시 말을 멈춘다. 숨이 흔들린다.
“결국 못 찾았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흔적도요."
천천히 고개를 든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참았던 게 터졌습니다. 분노도, 걱정도 아니고… 그냥 공포였습니다. 기껏 강해지기 위해 특전사에 가고 무술을 배웠는데 막상 아무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느낌. 화가 나서 이를 갈다가도, 갑자기 어머니가 혼자 울고 있을 장면이 떠오르면 숨이 막혔습니다.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왜 나를 버렸는지 따지고 싶다가도… 혹시 내가 갑자기 입대한다고 없어져서 더 망가진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면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래서 계속 움직였습니다. 지금 사업을 시작한 후론 미친 듯 일만 했습니다. 멈추면… 생각이 따라오거든요. 어머니를 못 찾았다는 사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나."
내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하나만 물읍시다."
"왜 상담을 택했죠?"
그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이제 제가 상담받을 차례인가요?"
내가 차분히 미소 지으며 답한다.
"아니요. 갑자기 궁금해졌을 뿐입니다."
그는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설명이 안 돼요. 사건이 지나간 뒤, 상처가 굳은 뒤에야 답이 달라붙는 거죠."
"상담은 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이 너무 빨리 죽지 않게 붙잡아 두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왜 그렇게 버텼는지, 왜 어떤 날은 숨을 쉬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지는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추어 서둘러 다듬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방이죠."
숨을 고르며 미소를 짓는다. 차를 한잔 마신 후 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강해지는 법은 배울 수 있었겠죠. 특전사에서, 싸우면서, 일하면서요. 그런데 무너지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과 그 방에서 차를 한 잔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자기의 걸음 속도를 되찾을 때까지 맘 놓고 주저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샹들리에나 은촛대보다 약한 빛으로도 충분한 곳. 설명되지 않아도, 마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방이니까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몸을 뒤로 물리며 답했다.
"아주 시적인 답변이군요."
잠시 눈을 감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정리하다, 이 서재가 지금처럼 아늑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지 문득 깨닫는다. 다시 눈을 뜨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과 대화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가 나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