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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Oct 06. 2021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자 이야기

이제서야 보이는 시어머니 마음속 내 마음

언젠가 아이 문제로 시어머니와의 전쟁을 호되게 치른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평생을 함께 하려고 선택한 남자를, 지금의 그 훌륭한 모습으로 길러내신 분이잖아. 더 이상 미워하면 안 될 것 같아.”


친구의 성숙함에, 그리고 반박할 수 없는 현명한 깨달음에 놀랐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친구의 그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구나 겪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미묘한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내 머릿속을 스치며 불편해진 마음을 다독여준다.


얼마 전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 2년 만에 한국을 찾았고 한국에 있는 동안 시댁에 머물렀다. 그간 함께한 세월 덕분일까, 시댁에서 지내는 것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른들께서 많이 배려해주신 덕분이겠만.


어느 날,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중 시어머니께서 툭 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내뱉으신다.


“난 네가 부럽다.”


내 시선은, 늘 그렇듯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집안일이나 육아에서 자신의 몫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남편에게로 향했다.


‘어머님도 보시는데 살살 좀 하지.’


복에 겨운 생각 끝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으니, 어머님께서 다시 말을 이으신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서로 도우면서. 근데 우리 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옛날엔 다들 그랬다지만 두 아들을 길러내는 힘든 세월 중에, 살가운 남편의 도움이나 가정주부의 삶에 대한 올바른 사회의 시선이 어찌 아쉽지 않으셨을까. 벌써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자신의 아들이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 지금도 ‘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는 시어머니의 솔직한 마음이 아프게 와닿는다.


항상 받기만 하는 게 죄송해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식사라도 한 끼 내 손으로 지어드리고 싶었다. 시아버님께 원하시는 메뉴가 있냐고 여쭈었더니 몇 년 전 해드렸던 된장찌개를 말씀하신다.


“내가 딱 원하는 스타일이었어. 네 어머니한테 그렇게 끓여달라고 해도 안 해줘.”


‘헉. 아버님 감사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어머님이 듣고 계시잖아요!’


한껏 어색해진 그 순간 어머님이 한 마디 쏘아붙이셨다.


“마누라 귀한 줄 모르지.”


어머님께 잠깐이라도 쉬시라고 말씀드린 뒤 진땀을 흘리며 저녁상을 마무리하고 다 같이 모여 앉았다. “그래 이 맛이야!”를 외치시는 시아버님의 눈치 없는 말을 뒤로하고 어머님은 갑자기 뜨거운 물을 찾으신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어머님이 뜨거운 물을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물이 어머님의 마음을 녹여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우리가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어머님은 미국에서 우리가 제일 그리워할 어머님표 김치를 준비하고 계셨다. 새벽에 잠까지 설치시며 절이신 배추에 갖가지 좋은 것들로 맛을 낸 속을 버무려 나에게 간을 보라 하신다. 한 입 가득 넣고 씹으니 박수가 절로 나왔다.


“어머님, 너무 맛있어요!”


그저 맛있어서 맛있다고 했을 뿐인데, 어머님은 되려 나에게


“고맙다.” 하신다.


고생은 당신이 다 하시고 왜 나에게 고마워하시는지 짠한 마음이 들어 순간 울컥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재빨리 김치를 집어 어머님도 드셔 보시라고 입에 넣어 드렸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해줘도 무미건조한 반응뿐인 남편과 두 아들 틈에서 소란스러운 리액션이 그리우셨던 걸까. 아니면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가족에게 이제야 무언가 해줄 수 있어 마음이 놓이신 걸까. 혹시 이 모든 생각의 끝에 당신의 존재의 이유를 다시 느끼신 걸까. 아직도 그날 어머님께 들은 고맙다는 말이 너무 슬프다.


이번 3주 남짓한 한국에서의 시간을 통해 내가 미국 생활과 맞바꾼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그것을 뒤로하고 온 미국이니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 값지게 보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시어머니에게서 한 여자를 보았고, 그 여자를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졌다. 앞으로 더 깊어질 두 여자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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