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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Nov 12. 2021

전업주부 사춘기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전업주부예요."라고 답하는 게 아직 어색한 나는, 3년 차 전업주부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3년마다 직장생활의 고비가 온다는 말이 있던데, 전업주부도 그런가 보다. 최근 들어 부쩍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의심하는 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의 난, 내가 맡은 일은 당연히 잘 해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야말로 '맡은' 일이니까. 그래서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생각했고, 잘 못해낼 때에는 괴로워했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맡기기는 하지만, 또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난 많은 시간, 내 기준으로 당연히 잘 해내야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다른 이들 대비 곱절의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일이 잘 끝나도 나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을 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은 크게 두 가지. 가족들의 의식주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집안일과 두 아이 육아가 그것이다. 함정은 그 두 가지 모두 회사일을 풀타임으로 하는 남편과 함께 한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집안일과 육아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둘 모두 노력 대비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나에게는, 내 일을 남편과 나눠서 하는 와중에 나의 노력의 결과까지 확인하기 힘든 이런 상황이 쉽지 않다.


나의 보통의 하루를 요약하자면,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을 돌보지만 여전히 집안은 어지럽고, 두 아이 중 어느 하나도 백프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짧지만 긴 시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너무 피곤한데 하루 종일 뭘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날엔 허무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전업주부인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의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감정들이 나 스스로에게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내가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회사생활 외에도 소위 자기계발과 사회생활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대학원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했고,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낼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두 가지 모두 잠정 중단 상태이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위한 짧은 시간도 잘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갓 7개월이 된 둘째 핑계를 대 보지만, 사실 어린아이를 데리고도할 수 있는 것들도, 방법도 분명 있다. 단지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뿐.


두 번째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의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해서이다. 대체 전업주부, 전업맘이란 뭘까 고민해보았다. 전업주부로서 내가 하는 일은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끝을 내야 하는 간단한 것들이 아니다. 가족원들의 인생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각자의 인생을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장기과제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 노력의 결과를 보고서 리뷰하듯 평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아직 열심히 인생을 가꾸어가는 중이니 내가 전업주부로서 하는 일의 결과를 지금 논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남편이 얼마 전 말했다.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다. 혼자 나가봐야 어차피 애들 생각에 마음 급하게 돌아올 게 뻔해서 시도를 안 했는데, 아무래도 이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얻는 혼자만의 시간에 꼭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조용히 내 마음속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가족들을 돕는 인생의 조력자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내 인생에 집중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젠 눈에 보이는 결과물보다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내가 성숙해지고 가족들이 행복해지는지로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이 글을 꺼내어 읽기로 다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가족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가족들의 뒤에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도록. 그리고 먼 훗날 나와 내 가족 모두가 행복했다 하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그날, 전업주부로서의 나의 성적표는 두말할 것 없이 만점일 것이다. 그날을 위해서 오늘도 즐겨보려 한다. 어디에 가 닿을지 모르지만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기쁨이 가득한 우리의 성장의 여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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