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에요."
얼마 전 아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들은 말이다. 친구들이 슬퍼하거나 화를 낼 때면 달려가 위로를 해주는 아이라고 하셨다. 친구들을 도와주길 좋아하고, 친구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아이라고 했다. 며칠 전엔 “넌 특별한 아이니까 슬퍼하지 마”라는 말로 한 친구를 위로해줬다며 놀라워하셨다.
짧았지만 울림이 있는 면담시간이었다.
아들이 나와 많이 닮아 있어 신기하면서도, 또 그렇기 때문에 나만 짐작할 수 있는 아들의 마음 상태를 생각하니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본인의 인생을 담기에도 부족한 어린 마음속에 다른 이들의 감정과 문제까지 담아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때는 대학 3학년, 완벽한 어른도,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그 어딘가에 서있던 시절, 난 해외에서 교환학생으로 짧은 시간 공부를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한 친구의 안경이 물에 빠져 사라진 것이다. 그 친구는 안경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기도 했고, 외국에 공부하러 온다고 좋은 안경으로 마련해온 터라 많이 속상해했다. 나를 포함한 함께 여행 중이던 일행 모두가 잠시 일정을 멈추고 그 친구를 도와 안경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안경이 다음 날 드디어 주인의 손으로 돌아온 그 순간 난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가 왜 울어?”
그때의 난 친구의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그 친구는 16년이 지난 그날의 기억을 꺼내며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냥 고맙다고 했으면 됐을텐데…라며.
난 안다. 그날 친구가 나에게 고맙다 말했더라도 분명 난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는 걸.
그때도 지금도 난 공감과 협동의 선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의 안타까운 상황에 공감하는 것과 그 상황을 도와서 해결해야 하는 책임(혹은 선의)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둘이 뒤죽박죽 된 상태로 상황을 인식한다. 그렇다 보니 내 눈엔 언제나 내가 힘을 보태어 해결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나는 만능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므로 주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나는 많은 날 나의 무능함에 좌절하는 삶을 살고 있다.
친구가 안경을 잃어버렸던 그날도 친구가 안경을 잃어버려 속상해하는 모습과 안경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뒤섞여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조차도 뚜렷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눈물로 친구를 당황하게 했던 것이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나오며 난 16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그리곤 나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어쩌면 나와 닮은 나의 어린 아들을 지켜야 하는 나를 위한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온 마음으로 친구를 이해하며 시절을 나눌 수 있는 깊고 진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잊지 않길. 그리고 슈퍼히어로만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길, 너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