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이렇게 많이 먹는데 너도 이건 다 먹어야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끝에 뜨끔했다. 절대 비교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또 불쑥 나와버렸다.
다행히도 나의 어린 아들은 아직 타인과의 비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친구와의 다른 점을 발견할 때면 이유를 궁금해하긴 하지만 그 차이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친구가 멋진 일을 한 날엔 엄마에게 친구 자랑을 하며 함께 기뻐할 줄도 안다. 이런 아들 덕분에 난 순수한 관계란 무엇인지, 관계가 주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곤 한다.
그런데 난 어쩌다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누군가는 그랬다. 이게 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자본주의식 행복 계산법 때문이라고. 무엇이 되었든 남들보다 더 가져야 더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느꼈던 놀라움들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알던 세상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했던 생경했던 순간들을. 이런 순간들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소위 더 큰 물이 될수록 잘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수록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그 놀라움들은 강도가 더 커진다. 다만 학습된 사회적 행동들로 감정들을 적절히 감추고 컨트롤하는 것일 뿐이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예전보다 관계 속에서 더 고달파진 데는 소셜미디어의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예전보다 몇 배 더 확장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그 속에서 나를 재정의하며 산다. 능력, 외모, 부, 건강 등 그 형태가 무엇이 되었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나와는 평생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교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이유 없이 못난 사람으로 만들곤 한다.
나라고 다를 리 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인정에 목말라하고, 또 그 관계 속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나도 분명 내 아들과 같았던 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단순하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때의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눈이 변하기 시작한 그날은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학교 대표를 선발하는 피아노 오디션에 단짝 친구와 함께 출전을 했었더랬다. 결과는 친구만 합격. 그게 뭐라고 합격한 친구를 보며 슬퍼하던 어린 날의 나,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수 없었고, 오디션에 탈락한 나의 작은 실패는 친구의 합격으로 쓰라림이 배가 되었다.
그때의 난,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했던 나의 부족함과 피아노보단 발레를 더 잘했던 나만의 재능은 보지 못했다. 그저 친구의 작은 성공을 나의 큰 실패라 생각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어디서든 피아노만 있으면 좋아하는 곡 몇 개쯤은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나의 친구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난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산다. 남들에겐 관대하고 나에겐 엄격하다. 물론 그런 나의 성향이 나를 좋은 쪽으로 채찍질하기도 했겠지만 이젠 의미 없는 감정소비는 그만두려 한다.
우리 모두는 비교 불가한, 서로 다른 인생의 맥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타고나는 외모와 성격, 성향과 재능부터 주어지는 환경까지 그 어느 것도 같은 이는 없다. 출발점과 가는 길이 다른 남과의 비교가 의미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행복을 나의 상대적 불행으로, 타인의 불행을 나의 상대적 행복으로 느낄 근거도 이유도 없다. 다른 이의 인생은 내 인생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참고서 정도의 관심만 주면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이의 단편적인 성공의 겉모습이 아닌 그 뒤에 숨은 고뇌와 노력이다. 그리고 그 안목으로 얻은 깨달음을 나만의 인생을 살아내는 데 자양분으로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Don’t compare your life with others. There’s no comparison between the sun and the moon. They shine when it’s their time."
(당신의 삶을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지 말라. 우리는 해와 달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 둘은 각자의 때에 빛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