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늘 예쁘지만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부모들 사이의 우스개 소리가 있다. 육아의 고됨을 잘 요약한 말이랄까. 최근 나 역시 아이들 소리로 소란스럽지 않은, 아이들의 방해 없이 내 속도에 맞춰 무언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치 빠른 남편의 배려로 며칠 전 드디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 주어지면 왠지 뭔가 특별한 걸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러니 속에 갇혀 있었는데,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길가의 단풍을 구경하고, 쇼핑몰에서 예쁜 것들을 보고,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 작은 일들을 왜 지금껏 못했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저기요!”
쇼핑몰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걸어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빨간 단풍나무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불러 세운다. 뒤돌아보니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였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저 오늘 좀 예쁜 거 같아서요.”
넓디넓은 주차장에서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불러 놀라고, 아이 엄마의 당당함에 또 한 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 아이 엄마는 두 아이에게 한쪽으로 물러서 있으라고 하고는 나에게 빨간 단풍나무가 잘 나오게 본인의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을 한다.
잘 찍어주고 싶어 무릎을 굽히고 앉아 찍는데 모델처럼 여러 포즈를 취한다. 또 한 번 놀랐다. 여러 장 찍은 뒤 마음에 드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니 고맙다며 그제야 날 보내준다.
그 아이 엄마에게 내가 찍어준 사진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직후여서일까, 왠지 그녀에게도 오늘이 기억하고 싶은 하루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정으로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오진 못했지만 다른 날보다 예뻐 보이는 나 자신을 잊지 않고 싶은 그런 날.
육아를 하다 보면 나를 잊거나 잃기 쉽다. 나의 우선순위가 내가 아닌 삶을 살기 쉽다. 그래서 내가 나를 의식적으로 아끼고 돌보지 않으면 지나간 시간 뒤에 후회가 밀려올 수 있다. 그래서 그날 만난 이름도 모르는 육아 동지가 당당하게 자신의 작은 행복을 챙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미국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형식적으로 내뱉게 되는 “Have a good day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외쳤다. 내가 찍어준 사진이 그녀의 특별한 하루에 1%라도 의미를 더했길 바라면서. 그리고 가끔씩 힘든 시기가 와도 성장하는 아이들과 또 아이들을 길러내는 고된 시절을 통해 성숙해가는 우리의 삶을 보며 다시 힘내 보자는 응원을 담아.
“Have a good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