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안의 노란 콩이 어느 날 보니 자라 있고 또 자라 풍성한 콩나물이 되어있듯, 영 안 클 것만 같고 그날이 그날같던 아들이 어느새 많이 성장해 있다. 도무지 적응을 못할 것 같던 어린이집 생활에도 점점 마음을 붙이기 시작했다. 첫등원해서 30분만에 하원한 것에 비하면, 1년이 지난 지금 오전 10시에 등원하여 오후 4시에 하원을하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그 이상이다.
유난히 예민한 동동이가 태어난 지 35개월 만에 난생처음 경험하며 느꼈을 어린이집 생활의 어색함과 난해함을 이해해 보려면 또 못할 것도 없다.
동동이의 입장
집돌이 아이의 입장에서, 어린이집이라는 낯선 장소에 가는것 자체도 싫고, 가는 길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 겨울의 집 밖은 추울 것이 뻔하고, 여름날은 숨이 막히게 더울 것이다. 거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원래 입맛이 없는데 엄마는 식탁 위에 뭘 자꾸 차려놓고 먹으라고 한다. 물로 세수까지 해야 하니 귀찮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에 겨울에는 아래위 내복에, 티에 바지에, 조끼에, 핫팩까지 붙인 코트에 마스크와 장갑, 그리고 모자까지 한 짐을 입고 쓰고 나가야 한다. 가는 길에 엄마는 꼭 자전거에 자기를 태우고 뒤에서 밀면서 전속력으로 걸어가는데, 솔직히 자전거 손잡이도 차갑고, 승차감도 별로 안 좋다. 어린이집에 가면 예쁜 선생님이 맞이해주시는 것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스스로 밥과 반찬을 다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친구들이 잘 먹으니까 예쁜 선생님들이 엄청 칭찬을 해주신다. 그래서 5개월 만에 마스크를 내리고 밥을 먹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 김치는 식감이 별로 안 좋은데, 때에 따라 깍두기, 배추김치가 나와서 당황스럽다. 어느 날은 엄마라면 아예 먹일 시도도 안 하는 채소 볶음밥이 나온다. 헐.... 집에서는 마음껏 편식을 할 수 있으나, 어린이집 가면 얄짤없다.
게다가 동동이는 표현언어발달이 느려서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려운데 애들은 자꾸 다가와서 손을 내밀고 말을 건다.
"같이 놀래?"
'Nope!!'나는 블록 혼자 하고 싶어.'라고 거절하고 싶은데 아직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다. 거절 다운 거절을 못 하자 친구들이 또 와서 말한다.
"우리 같이 놀래?"
'휴... 난 혼자가 좋다고..'
자꾸 다가오는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잡기 놀이도 같이 해주고, 블록 쌓기도 해 주면서 놀아보기로 한다. 막상 놀아보니 재미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친구들이 모두 낮잠을 잔다. 아직도 나는 놀고 싶은데, 시간 되면 애들이 각자 정해진 자리에 이불을 펴고 다 잔다. 기분이 안 좋아져서 울까 하다가 혼자서 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숫자를 헤아려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엇..' 아무리 양을 헤아려도 잠이 안 온다. 어찌하다 간신히 잠이 들면 갑자기 선생님이 또 노래를 틀어놓고, 창문을 열고, '일어나요 친구들!!!' 한다. 이제 막 잠들었는데, 일어나라니..... 아... 스트레스... 집에 가고 싶다......
단체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괜찮아.
올해 2월의 어느 목요일이던가... 어린이집에서는 만 2세 반 수료 기념으로 단체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강당으로 올라가서 다 같이 찍는데, 동동이만 안 왔다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난감했다.. 동동이는 사진이고 뭐고 그런 거 필요 없고, 난 모르겠고, 오늘은 도저히 안 가고 싶은 거다. 월, 화, 수요일 연이어 어린이집에 간 것이 동동이의 최선이었던 것이다. 도망가는 동동이를 잡아서 내복을 간신히 입혔는데, 내복을 붙잡고 울고, 청바지를 입히려고 하니 굴러다니면서 안 입으려고 피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나 갈등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갈등을 하든 말든, 아이가 안 가겠다고 우기는 데에는 장사가 없다. 그냥 사진을 포기했다.
난 그날, 엄마는 아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긴, 내 남동생을 보아도, 남편을 보아도, 제부를 보아도,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늘 이긴다. 게다가 다섯 살밖에 안된 동동이는 벌써 힘이 장사라, 작정하고 떼를 쓰면 내가 이기기가 어렵다. 단체사진에서 동동이만 쏙 빠진 것이 너무 속상했지만, 만 3세 반 수료도 있고, 유치원 가면 유치원 졸업식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졸업을 기념할 날들은 많고 많을 것이니, 안 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빨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동동이에게 '오늘 어린이집 쉬자.'라고 말했다. 아침부터 아이의 어린이집 안 가겠다고 문자 그대로 '발버둥 치는' 사건을 겪고,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뽑아서 내 책상 앞으로 가서 성경책을 폈다. 특별한 아들, 동동이 육아로 인해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의 신앙심은 날마다 더욱 깊어만 갔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 돼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마가복음 4장 26절-28절)
나는 동동이라는 예쁜 씨앗이 자라 싹이 되고, 충실한 열매가 될 때까지 특별히 해줄 것이 없다. 그리고 언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즐겁게 가고, 언제 유창하게 말을 하고, 언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또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놀게 될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사랑을 해주고 기다릴 뿐이다. 누워서 눈만 깜빡이던 신생아이던 아이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뒤집고, 기고, 앉고, 서고, 걷다가, 뛰어다녔던 것처럼..... 아이의 성장은 어쩌면 스스로 이뤄나가고 가꾸어야 할 것일 뿐, 엄마는 곁에서 사랑으로 기다려줌이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커피와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자, 그제야 동동이를 향한 진심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구석에서 청바지를 끌어안고 있는 동동이를 환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동동이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키스(Kiss)!!'라고 말하며 내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그리고는 평소에 즐겨서 노는 알파벳 퍼즐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정을 되찾으니 아들도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나는 아직 눈물이 고여있지만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귀여운 동동이를 꽉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깎아서 접시에 예쁘게 올려주었다. 포크로 야무지게 찍어서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는 동동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