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이 좋다. 코로나 팬데믹이라 집에 갇혀있다시피 할 때에도 살만했다. 어차피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원래대로, 하던 대로 살면 되었으니까. 집순이인 나는 새벽만 되면 집 앞에 배송되어있는 식재료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갔다. 예전처럼 혼자 조용히 카페에 가고 싶다면 커피 메이커에 아메리카노를 내리고,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스타벅스 배경음악 들려줘!' 이렇게 말하면 지금 스타벅스에서 흐르고 있는 음악이 나왔다. 바깥공기가 그리우면? 거실의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순식간에 들어오니 문제없다. 굳이 밖에 나가야 할 필요성을 웬만해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나의 성향을 아들이 닮았나 보다. 사랑하는 아들 동동은 낯선 곳으로의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익숙한 집에서, 가장 편안한 복장으로, 가장 낯익은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낯을 많이 가리고, 혼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책을 보더라도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곤 한다. 책이나 장난감마저 낯선 것은 어렵고 어색하다.
동동이에게 외출은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설에는, 동동이의 성향을 이해하시는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지난번 시어머니 댁에 갔을 때 아이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들 가족을 보러 직접 오셨다. 문제는 친정이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번 추석에도 찾아뵙지 못했고, 두 분 다 연로하셔서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시어머니께서 댁으로 가신 후, 잠시 숨을 고르고 열심히 준비해서 친정으로 향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동동이에게 나는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사실은 비굴한 애걸복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 동동이 착하지? 이제 다섯 살 됐지? 한복도 이렇게 예쁘게 입었으니까... 세배 얼른 하고, 떡국도 맛있게 먹고 올 거지? 우리 동동이 이제 아빠가 머리 잘라줘도 안 울지?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잘랐잖아. 씩씩하고 용감하니까. 딱 두 시간만 있다가 오자!"
"............................."
2시간 정도 걸리는 외할머니 댁 가는 길에 창밖에 나무도 보고, 터널을 지날 때는 '우와!!!!!!' 하면서 좋아하고, 누나랑 장난도 치며 즐겁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어 외출 준비의 피곤함을 재충전하였다. (참, 이렇게 차를 타고 긴 시간 무리 없이 가는 것도 얼마 안 된 감사한 일이다. 작년만 해도 동동인 차를 타서 카시트에 앉은 그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울었으니까..)
큰 소동 없이 외할머니댁에 도착한 동동이는 나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운동화도 채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달래 봐야 소용없었다.
동동이가 네 줄기의 눈물을 흘리며 빽빽 큰소리로 우는 난리 통에 모두들 세배도 정신없이, 식사 차리는 것도 허둥지둥, 친정어머니께서 명절 음식도 싸 주실 때도 빠르고 순식간에 쇼핑백에 거의 던져 넣다시피 하여 챙겨주셨다. 정말 딱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우리 가족은 일어서야 했다. 나에게는 낯익은 모습이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그렇게 우는 아이를 처음 보셔서 그런지 우리에게 더 있다 가라고 붙잡지는 않으셨다. 내가 그동안 '우리는 외식 못해요. 동동이 미용실도 잘 못 가요...'라고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렸었는데 나의 말이 참임이 밝혀졌다. 재빨리 외할머니 댁을 나와 카시트에 앉아서부터 동동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아... 힘들었다..... 자극은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카페나 지하철에서 타인을 관찰하거나 그들의 대화를 아닌척하면서 살짝살짝 엿듣는 것은 재미있어하면서도 카페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소위 '기가 쫙 빨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얼른 집에 돌아와서 나의 서재에 들어와 온전히 혼자 있고 싶어 진다. 그런데 아직 자신의 피곤한 기분, 힘든 마음을 조절할 능력이 없는 만 3세의 동동이는 낯선 환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것을 울음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자신을 감싸고 있던 점퍼, 마스크, 모자, 장갑, 한복 저고리, 바지, 내복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듯한 표정으로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장작구이 통닭을 치킨무와 함께 포크로 야무지게 찍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외할머니댁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기만 했으니 당연히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교수님이나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먹는 산해진미는 잘 못 먹고 남기곤 했다. 그곳이 호텔 뷔페이든, 횟집이든, 레스토랑이든 불편하다... 그리고는 꼭 집에 와서 허겁지겁 끓인 뜨거운 누룽지에 배추김치와 낙지젓을 먹으며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낀다.
아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저런 애가 어디서 나왔을까?' 고민할 필요 없다. 그냥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거울을 보면 답이 나온다. 답을 알게 된 후로 무지하게 예민한 아이 옆에 예민한 인생 선배로 같이 서 있어 주고, 눈물은 닦아주고, 꼭 껴안아 주어야 하는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밤에 아이를 재우며, 뽀뽀를 해주고 조용하게 속삭여 주었다...
"동동아, 낯선 환경을 대할 때마다 힘들었지? 그 마음을 견뎌내느라 고생 많았지? 그런데 다음에는 조금 더 편안해질 거야,,,,, 네가 이 세상이 편안해질 때까지, 바깥세상이 더 궁금하고, 재미있는 것이 더 많아질 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어줄게. 그런데 굳이 뭐........... 집이 좋으면 나가지 않아도 좋아.... (그렇지만... 일단... 어린이집은 잘 졸업해 보자....)"
덫붙이는 글: 설에 운동화도 안 벗고 울다가 온 동동이는 두 달 뒤 외할머니 생신 때는 운동화를 벗고 서있었다. 한 달 뒤, 어버이날에는 식당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맛있는 갈비와 냉면을 얌전히 앉아서 먹었다. 만 4세가 된 6월 말에는 친구네 집에 가서 무려 초콜릿 케이크도 두 조각이나 먹었다. 이제 동동이는 미용실에 가서 우아하게 앉아 미용사 누나의 스타일링을 받을 줄 알게 되었다. 엄마인 나는 마치 예민한 우리 아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예민할 것만 같은 생각과 싸우느라 괴로웠다. 그러나 그런 나의 마음고생과는 상관없이 우리 동동이는 자라고 있었다. 단,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