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떠올리며 삶을 기뻐하다

삶에 주어진 '두 개의 날개'

by 김하예라


요즘 지인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자주 받는다. 바쁘고,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다가 휴대폰에 도착한 부고 메시지를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해지곤 했다. 아는 분의 부친상, 혹은 모친상까지는 그나마 조금 덜 놀라는 편인데, 친한 친구의 남편 장례나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분, 본인 장례 대한 문자를 받으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고,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멀쩡하던 속이 갑자기 메슥거리는 기분이 든다. 예상치 못했던 부고 문자를 받아 든 채로 생전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너무 일찍 세상과 이별한 그를 애도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장례식장에 갈 준비를 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장례식에 다녀오면,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찬 마음이 묵직해진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들이었고, 또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제자였으며 스승이었던 분들이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 하고,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공평하게 예외가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죽음'. 그 깊은 불안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한부의 숙명을 지닌 인간은 참 허망하고, 슬프고, 불쌍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죽음을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그야말로 허무한 삶을 살고 있다'라는 하나의 날개와 '삶의 모든 순간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날개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은 '죽음'으로 끝날 허무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그 모든 날 만큼은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삶이 내게 부여한 책임을 마지막까지 다하는 부지런한 삶을 살고 싶다. 도서관에 한동안 꽂혀 있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거나 소각될 운명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그날까지 저자의 생각과 고뇌가 남긴 지식의 산물을 고이 품고 있는 한 권의 책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정성껏 설거지를 했고, 청소를 했으며, 어린 아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깔깔 웃고 즐거워했다. 눈가나 입가의 주름 걱정 따위는 하지 않고 숨이 찰 정도로 크게 웃으며, 맛있는 식사를 나누고, 가족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땅한 어휘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면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중이다.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빛나는지 생각하면 나의 죽음조차 마냥 슬프거나 회의적이지 않다. 삶을 즐기고 기뻐하며 누리다가 운 좋게도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이별을 조금씩 준비해 나가고 싶다. 이 땅에서 내가 맡았던 일,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나가며 주변을 정리할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내가 떠난 후에 최대한 당혹스럽지 않도록 세금은 완납해 놓고, 보험회사 전화번호와 담당자의 연락처를 정리해 두고, 들어놓은 적금의 은행, 비밀번호도 잘 정리하여 가족에게 알려주고 가려고 한다. 아 참, 나의 장례를 도와줄 상조회사 전화번호도 미리 알려주어야겠지.(이런 이야기 몇 년 전에 한번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버럭 화를 내더니 아, 제발 오버 좀 하지 말라고 하긴 했다.) 가지고 있던 소중한 물건, 그리고 재산의 일부를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잊지 말고 해야 하겠다. 그렇게 나의 삶을 소란스럽지 않게 차분히 마무리한 후에 평안하게 죽음을 만나면 참 좋겠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일 년에 (많으면) 두어 번 나를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다. 자그마한 나무 푯말에는 내가 참 좋아하고 마음에 들었던 내 이름 석자가 곱게 새겨져 있었으면 한다. 그들이 나무가 심기운 언덕까지 오느라 땀이 나고, 숨이 찰 때, 잠시 앉아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는 풍성한 한 그루의 나무였으면 한다. 나무의 그늘 아래 잠시 앉아 나를 떠올리며,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그들의 기쁘고 찬란한 생을 바삐 살아가면 참 좋겠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인 거야..'라는 어느 노래 가사에 담긴 그 귀한 '약속'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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