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먹을 자유

배추김치에 관한 이야기

by 김하예라

어느 날 오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어머님이 김치를 주시겠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의 지인께서 김치를 많이 주셨다고 했다. 이어서 커다란 택배 상자 사진이 메시지로 왔다. 혼자 드시기는 어려우니 필요하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겠다는 말씀이셨다. 참 감사하지만 망설여졌다. 응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나의 고민이 한나절 간 이어졌다. 그것은 김치에 진심인 우리 가족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평소 외식보다는 집밥을 건강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위해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한다. 그런데 김치는 담그기가 어려웠다. 일단 너무 커다란 생배추를 다룬다는 것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신혼 때부터 홍진*, 종*집, 풀*원, 예*담, 비*고에 이르기까지 시중에 파는 김치회사 제품은 거의 다 사서 먹어 보았다. 우리 가족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드디어 100퍼센트 신선한 우리 농산물로 담근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갓 담가도 맛있으며 익어서 신 김치가 되어 찌개나 볶음, 고등어 찜에도 잘 어울리는 김치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냈다. 음식 관련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니 더 욱 믿음직했다.


나와 남편은 다년간 김치 보관과 소비 관련 실험을 해본 결과로 3kg은 너무 적고, 10kg은 감당 못할 만큼 많으며 딱 5kg이 먹기 좋다는 것도 알아냈다. 맞춤옷처럼 딱 맞는 맛과 양을 찾아냈을 때의 기분 역시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어머니 지인 댁 김치라니. 몹시 불안했다.


우리 집에서는 특히 나와 다홍이가 김치 맛에 유난히 예민하다. 갓 담근 김치의 아삭하고 사각거리는 식감과 깔끔하게 매콤한 맛, 시간이 지나 발효가 잘 되어서 새콤하고 시큼하게 익은 맛, 보관하는 과정에서 수분 부족으로 김치 표면이 공기에 많이 노출되어 부자연스럽게 발효될 때 나는 군맛이 혀 끝과 코에서 곧바로 감지된다. 다홍이는 일단 맛이 이상하면 내가 그 김치에 무슨 짓을 해도 먹지 않았다. 들기름과, 올리고당, 고춧가루, 다진 파와 마늘을 첨가하여 달달 볶아 주어도, 물에 한번 씻어낸 후 양념을 다시 하여 삼겹살과 함께 넣고 돌돌 말아 멸치육수를 붓고 김치찜을 만들어주어도, 잘게 다져서, 갖은 채소, 다진 고기와 섞어 만두 속을 만들어서 김치만두를 해 주어도 전혀 먹지 않았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남편만 묵묵하게 나의 요리를 먹어줄 뿐이었다. 결국 보관이 잘못되어 '맛없어진 김치'는 냉장고에 오랫동안 머물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고 말았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김치를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릴 때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오곤 했다.


나의 김치에 관련한 예민함 내지는 실패담을 생각할 때, 어머니께서 주신다는 그 김치를 먹을지 말지의 이 중대한 결정을 나 홀로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 친구가 하소연을 시작했다. 매년 시어머니 댁에서 김장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맛이 없단다. 무와 태양초 고춧가루, 천일염과 액젓으로 김치 속을 만들어서 시판용 절임배추에 넣는 식이었는데, 매년 그 절임배추의 상태가 다르고 예측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어느 해는 덜 절여져서 몇 달이 지나도 김치가 도무지 익지를 않고, 어느 해는 너무 절여져서 김장을 해 놓으면 짜서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척추협착증도 앓고 있어서 하루 종일 앉아서, 또는 구부린 자세로 김장에 참여하고 나면 허리 통증에 그다음 날은 반드시 단골 한의원에 가서 부황을 뜨고 침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말없이 시댁 김장에 참여하던 내 친구는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어서, 남편을 통해 이제부터는 시댁에 김장하러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시어머니와 의절할 뻔했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나의 물음에 친구가 말했다.

"그냥 받아서 먹다가 이상하면 버려. 그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야."


또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그녀는 임신 초기였을 때만 빼고 전라도 시댁으로 내려가서 남편의 6남매와 그들의 가족이 모두 겨울과 그다음 해 봄까지 먹을 엄청난 양의 김치를 2박 3일 동안 담고 왔다. 김장 날짜를 그 해 추석 가족 모임 때 정하는데, 여섯 가정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송편을 먹다 말고 서로 얼굴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하여간 유산의 위험 혹은 출산, 전쟁이 일어나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그 이름도 무서운 '시댁 김장'이었다. 그 친구는 '그 김치는 남편의 입맛에만 딱 맞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혼자서 못 다 먹은 것을 결국 남편 몰래 버렸다. 나의 친정어머니도 김장 때만 되면 할머니와의 이런저런 갈등, 맛에 대한 온 가족의 평가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셨다. 그런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도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세대를 거쳐 계속되고 있다니.


친구들과의 전화를 끊고 기분이 착잡해졌다. 우리 민족 고유의 식품인 김치로 인한 시댁과 며느리 간의 갈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활용하여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고, 건강에도 좋은 소중한 전통음식을 우리 가족의 입맛에 딱 맞는 것으로 선택하여 즐겁게 먹고 싶었다. 즉, 어머님의 제안은 거절을 하고 싶었다. 바로 며칠 전 주문해서 받아놓은 맛있는 김치가 '어서 나를 먹어 주세요!'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집 냉장고에 낯선 김치를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남편에게 장문의 거절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님의 호의를 거절한 것이 이내 마음에 콱 걸렸던지 밤에 꿈까지 꾸었다. 어머님이 바로 그 택배 상자를 가져오셔서 꼭 나 혼자 다 먹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상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그 김치말이예요.... 어머님께 어떻게 말씀드렸어요?"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씀드렸는데요? 필요 없다고.."라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말없이 휴대폰 화면으로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남편이 '어머니 괜찮아요. 필요 없습니다.' 했고, 어머니는 '그래라.' 하셨다. 남편은 그렇게 싶은 말을 간단명료하게 말했고, 어머님도 간결하게 대답하셨다. 거절 한 번 하려면 장문의 글을 써야 하는 나와는 달리 거절이 별로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김장을 안 하시는 시어머니의 아들과 결혼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김장이라는 고된 노동 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절인 배추에 생굴이나 돼지고기 수육, 갓 버무린 김치 속을 넣어 먹는 보쌈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농협 하나* 마트에서 파는 김장김치 속과 절인 배추 약간을 사고, 수육용 고기를 사서 집에서 해 먹으면 그런대로 대체 가능하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보쌈 맛집에서 포장해 와서 먹어도 되고 말이다. 각 가정의 며느리들에게 삶의 방식에 맞추어서 선택하여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소비하여, 다음 김치를 기다리는 것도 큰 즐거움인데, 그 선택의 기회를 남에게 억지로 빼앗기는 것은 어쩐지 억울하다.


각자 먹을 김치는 각자 선택하면 모두가 만족할만한 평화롭고 합리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조그마한 소리로 외쳐본다. 아니 써 본다...


'어머니, 저희 집 김치는 저희가 알아서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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