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그는 나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저장 강박과 결벽이 만났을 때...

by 김하예라

나는 버리는 것이 좋다. 필요 없는 것, 고장 난 것, 그리고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가 말했던 '설레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편이다. 열심히 정리하고 비워내서 깔끔해진 집이 참 좋다. 그러나 남편은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거의 모든 물건에 의미를 두고, 추억을 되새긴다. 그는 나중에 집을 지으면 자신이 그동안 사용했던 책, 전자기기나 명함,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공구상자, 카세트테이프나, 영화를 복사해 놓은 CD까지, 심지어 영화 티켓까지 전시해 놓는 방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나는 정돈된 환경에서 정리 잘하는 아이가 집중력이 생겨 공부도 잘한다며, 기초 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성도 자라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남편은 장난감이 사방팔방 널브러져 있어야 아이의 창의성이 길러진다고 주장했다. 나는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있으면 그것부터 깨끗하게 치워놓고 나서 요리를 시작하고, 남편은 요리에 필요한 그릇이나 조리 도구만 설거지한 후 요리를 했다. 우린 참 다르다.


우리는 서로를 '저장 강박증'과 '결벽증' 환자라 불렀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 우기며 논쟁에 논쟁을 이어갔고, 어느 날은 답답하다 못해 나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 결혼식날 '신혼 초에는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느냐, 아니면 끝부터 짜느냐를 놓고 싸우다가 이혼 위기가 온다'는 목사님의 주례 내용을 듣고 설마 하면서 웃었는데, 살아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가능성이 있다. 내가 일하러 간 사이에 휴가이던 남편이 분명 약속했던 설거지를 해 놓지 않아서 만삭의 몸으로 가출을 감행한 적도 있다. 날짜도 기억난다. 물론 갈 곳이 집 근처 카페밖에 없었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하여간 짧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며 '청소'와 '버리는 문제'에 대해 수 없이 싸웠다. 그렇지만 남편은 여전히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여전히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청소와 정리에 진심인 나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보관하는 것에 진심인 남편. 이렇게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아직도 헤어지지 않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싸워봐야 변함없는 것을, 뭐 하러 싸우나' 하는 자괴감 내지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이기도 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상대의 뉘우침이나 반성 혹은 변화를 포기했다.


우리는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서로의 진심을 존중하기로 했다. 일종의 합의를 본 것이다. 먼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전업주부인 내가 집안의 주도권을 가지고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아이들이 각자 학교, 유치원 등으로 나가고 나면 나는 제일 먼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고 이불 정리부터 시작하여 다홍이방, 안방, 거실, 서재의 순서로 말끔하게 정리를 한다. 그렇게 정리를 해 놓으면 돌아온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르기 시작한다. (남편은 이 부분에서 '그러니까 뭐 하러 치우냐'는 주장이다.) 그렇게 어질러진 집을 저녁 먹기 전에 한 번 더 정리 정돈을 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어지르게 하기 위해서 청소한다. (남편은 '아이들이 깨끗한 집에서는 마음껏 어지르는 데에 부담감을 느낀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렇게 주 5일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나를 남편은 인정해 주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남편이 집에 있는 토요일은 난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나는 토요일 오전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외출을 한다. 서점이나 도서관, 쌀국숫집, Zara 매장, 액세서리 매장을 순회하느라 밖에 있다. 남편은 내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과 지낸다. 6시간 정도 후에 집에 돌아와 보면, 집은 이사 가는 듯, 혹은 도둑이 든 것 같은 모습이다. 당연히 이불 정리 따위는 되어있지 않다. 설거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하루 종일 씻지 않아 꼬질꼬질해진 동동이가 정신없이 어질러진 거실에서 즐겁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 외출하여 돌아온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엄마!!"하고 부르며 환하게 웃는다. 다홍이는 MSG 가득 들어간 맵고 짠 라면을 신나게 먹고 있다. 집안은 흡사 정글과 같고, 아이들은 타잔이 된 듯하다. 그러나 엄마와 아내의 잔소리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은 듯한 모습이다. 남편은 자기의 에너지를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즉, 동동이가 다치거나 방치되면 안 되니까 집안일을 최소로 하고 아들과 논다는 것이다. 계속 듣다 보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집안일하느라 바쁜 틈에 동동이가 살짝 다치기도 했다. 그리고 '집은 쉬기 위한 곳'이라는 남편의 주장을 인정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의 마음은 우리가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나와 비슷한 결벽증의 남편을 만난다면 아이들의 정신이 아플 것 같다. 엄마와 아빠의 등쌀에 못 이겨 매일 자기 방을 정리 정돈하고, 늘 치워야 할 것이다. 청소라면 진절머리가 날지도 모른다. 반대로 남편이 자기처럼 청소 안 하는 아내를 만난다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 판단하여, 아동보호기관에서 아이들을 데려갈 수도 있다. 실제로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고 있던 아이들을 아동보호기관에서 데려가 버린 바람에 아이들을 찾게 해달라고 아이 아빠가 국민청원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알맞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아이들이 자유롭고 아늑하게 살 수 있도록 부모의 몫을 다하고 있다.


언젠가 다홍이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 봐, 다홍아, 너는 집이 깨끗한 게 좋아, 더러운 게 좋아?"

"난 상관없는데?" 쿨하게 다홍이 답한다. 그래서 다시 내가 물었다.

"좋아.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 너 엄마 없을 때, 집에 아빠만 계실 때, 친구들 집에 데려올 수 있어?"

단호하게 다홍이가 말했다.

"그건 아니지."

다행이다. 내친김에 남편에게도 물어보았다.

"정말로 더러운 집이 좋아요?"

남편이 명료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아..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또 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 덕분에 세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이 한 몸 온전히 헌신하리라.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남편의 장점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는 매일 출근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을 잘 찾아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참 편안한 아빠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를, 그는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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