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개당 10원짜리 부업의 가치

by 김하예라

나는 인생에서 알아야 할 지혜의 상당 부분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속담을 통해 배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에서는 사회에서 잘난 척은 금물이라는 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에서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어쭙잖은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나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에서는 부모님이 서로 다투실 때는 알아서 조용히 숙제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지혜로운 처세술 등을 배웠다. 속담들을 배우고 익히며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참으로 지혜롭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다양한 자연의 법칙과 인생의 모습을 꾸준히 관찰하여 인간이 꼭 알아야 할 이치를 속담으로 남기셨고, 대를 거듭하여 이어오다 바로 나에게까지 그것이 전달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린 내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속담이 있었다. 바로 '티끌 모아 태산'이다. 처음에는 '티끌'이 무엇인지 몰라서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티와 먼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간 내가 살아온 십여 년의 인생을 통해 수많은 집 먼지와 흙먼지를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미세한 알갱이들을 모아서 커다란 산을 만든다는 것은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한 것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양보해서 '100년간 티끌 모아 작은 동산'까지는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지만.


'티끌이 모여서 태산이 된다'라는 속담의 의미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바로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부터이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 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분들이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시고, 한국이 최빈국이던 시절, 그야말로 폐허가 된 곳에서 맨손으로 시작하여 자수성가하신 분들이다. 두 분의 희생이 없으셨다면 나의 아버지도 없고, 우리도 없을 것이기에 그분들께 언제나 감사하다. 나의 기억 속에 그분들은 좀처럼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왔는데, 마룻바닥에 종이 쇼핑백이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가 하시는 새로운 부업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쇼핑백 양쪽 손잡이 끈을 구멍에 넣어 안쪽에서 매듭을 지어 묶으셨다. 그리고 그것을 다섯 개 단위로 포장하여 교차하여 쌓아 50개를 한 다발로 묶는 작업을 하셨다. 그렇게 하나의 쇼핑백에 손잡이 끈을 만들어 완성하면 한 개당 10원을 준다고 하셨다.


무덤덤하게 며칠간 관찰만 하던 나는 하루 종일 수학 문제 풀고, 영문법과 씨름하고, 단어를 외우다가 집에 돌아와 돋보기 쓴 할머니 옆에 앉아 쇼핑백 부업을 했다. 어머니는 한시라도 시간이 아깝다며 언짢아하셨지만 나는 할머니 옆에 있으면 어쩐지 안정감이 느껴졌다. 기계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끈을 꿰고 50개씩 포장하여 각을 맞춰 쌓아 놓는 것은 나의 완벽주의를 자극하여 매우 말끔하게 작업을 마무리하게 했다. 내가 이뤄놓은 완성된 쇼핑백 더미를 보면 모종의 성취감마저 생겼다. 나는 아무래도 그런 단순 작업이 체질인듯하다면서 옆에서 고생하시는 할머니의 말동무도 해드리고, "할머니, 이거 하면 나는 얼마 줄 거야?"라고 물으면서 할머니와 협상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하루 종일, 성실하고 꾸준히 만드신 10원짜리 쇼핑백으로 한 푼 두 푼씩 모은 티끌은 마침내 태산이 되었다. 막내 손자의 가방, 둘째 손녀의 매직 스트레이트 비용, 그리고 맏이인 나의 대학 등록금이라는 이름의 태산 말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의 다락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바로 그 쇼핑백 여러 개에 가득 든 현금다발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께 그대로 가져다 드렸던 일도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주로 나의 할아버지가 노년이 되어서 하셨던 소일은 텃밭에 배추와 부추를 심어 시장에서 팔기, 작은 공장 경비, 그리고 이웃집 고장 난 보일러 고쳐주기였다. 할아버지는 새벽 여섯 시면 일어나셔서 자전거를 타고 텃밭에 가셔서 식사 때만 빼고 하루 종일 모종 심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가며 정성껏 채소를 키우셨다. 해 질 녘이 되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셨는데, 그 손에는 고등어나, 상추, 시래기, 젓갈 등의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서는 슬슬 공장으로 가서 야간 경비를 하셨다. 할아버지의 티끌은 모이고 모여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사역하시는 개척교회의 첫 피아노가 되었고, 손자, 손녀들을 위한 대학 등록금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에서 허세와 체면치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하게 모으고, 절약하셨고 자식과 자식의 자식들을 위해서 쓰시고, 장례비용까지 남겨주고 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존경한다.


근면성실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자란 덕분에 그 어떤 일이라도 노동은 모두 가치 있으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라는 것도 배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는 부지런한 생활습관과 소일거리를 하며 자주 이웃사람들을 만나고, 시장에서 채소를 팔며 손님들을 만나 소소한 이야기 나누는 사회생활 덕분에 할아버지는 사시는 동안 내내 건강하셨다. 증손녀인 다홍이의 재롱까지 보시고 감기를 앓는 것처럼 편찮으시다가 3일째 되던 새벽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원래 체력이 약한 분이셨는데,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밥을 차려주시고, 빨래도 해주시고, 부업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난 연약한 할머니에게서 강인한 정신력을 배웠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피, 땀, 눈물이라는 티끌이 모여 그분들의 자식과 자식의 자식에 이르는 여럿의 태산을 키워내셨다.


속담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자란 나에게는 하루하루의 티끌이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멀었다. 아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티끌에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일단 아침 여섯 시에는 절대로 못 일어나고, 최소한 여덟 시간은 잠을 자 줘야 그다음 날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다. 게다가 집안일은 결혼한 지 15년이 넘어가도 적응이 안 되고 때때로 하기 싫어 죽겠다. 일을 하더라도 돈 많이 버는 것만 하려고 한다. '내가 그래도 박사인데..'이러면서 교만한 생각에 가득 차 시간 투자 대비 얻는 이익에 대해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돋보기 쓴 할머니 곁에 앉아 늦은 밤까지 10원짜리 쇼핑백에 끈 꿰기를 하며 즐거워했던 고등학생은 어디 가고, 가성비 따지기에만 급급한 잔머리만 커버린 내가 남았는지 부끄럽고 씁쓸하다. 티끌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태산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오늘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놀림과 밭에 갈 때 늘 입으셨던 낡은 바지, 그리고 할머니가 코에 걸쳐 쓰시던 돋보기안경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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