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곡선으로, 사랑은 직선으로.

날마다 버럭 하는 나를 위한 처방전

by 김하예라

어느 날, 유튜브 영상에서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 고충을 털어놓는 어느 연예인에게 상담을 해주시는 장면을 보았다.


'잔소리는 곡선으로, 사랑은 직선으로 하세요.'


와. 정말 간결하고 명확했다. 박사님의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화도 잘 내고, 조바심이 많은 데다가 잔소리까지 잘하는 나의 부끄러운 민낯은 아이들을 키우며 있는 대로 다 드러났다. 뒤늦게 나의 모습을 깨닫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사과 편지 쓰고, 그러다 어떤 일에 또 화내고, 다시 뉘우치는 마음으로 사과의 선물을 건네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화를 내다보면 화가 점점 늘어났고, 가족과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나의 버럭 하는 화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말을 할 때, 잔소리나, 부정적인 말은 곡선으로 우회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사춘기 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잔소리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저 사춘기 아이는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동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방, 옷차림, 숙제, 식습관, 수면습관, 씻는 습관에 이르기까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분명히 아이와의 사이가 나빠질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나는 오은영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곡선의 잔소리를 하기로 했다. 아이의 혼돈스러운 방을 볼 때마다 "다홍아, 제발 방 좀 치워 귀신 나오겠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애써 참았다. 대신, "다홍아, 거기 쓰레기만 먼저 이 봉투에 담아서 줄래?'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발 좀 씻어!"라고 하고 싶지만, "다홍아, 이따 외출할 때 샤워 싹 하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나갈 거지?"라고 했다. "너 그렇게 하려면 학원이고 뭐고 다 그만둬!"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혹시 오늘은 우리 다홍이가 과제를 다 끝냈을까?" 하며 웃는 낯으로 간식을 다홍이 방에 넣어주었다. 그러면 딸은 간식이 담긴 쟁반만 딱 받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문을 딸깍 잠근다. "맛있는 간식, 고마워요 엄마!"라는 따뜻한 감사의 표현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참으면서 부드럽게 돌려가며, 온화한 소리로 하는 말도 잔소리는 어쩔 수 없는 잔소리다. 그래도 아이와의 관계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아이 방에 들어가 보면 기적적으로 정리가 되어있고, 숙제도 어느 정도는 되어있는 날도 있다. 가만 보니, 친구 만나러 나갈 때는 잘 씻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선생님께 벌점 받은 것, 벌점을 만회하려 상점을 받기 위해 교실 청소한 것, 실내화를 챙겨 갔더니 선생님이 어머나 웬일이니 하며 칭찬하셨다는 것, 체육대회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반 깃발을 만들다가 바닥에 마커 자국이 남아서 30분 동안 혼자서 지웠다는 것 등등)을 마치 랩 하듯 쏟아놓는다. 전에는 아이가 내 앞에서 입도 꾹 닫고, 방문도 꾹 닫아서 나의 속이 까맣게 탔었는데, 이만하면 엄청난 호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잔소리 곡선으로 하기가 사춘기 아이에게는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잔소리는 곡선으로 말하는 대신 사랑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다홍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사랑하는 딸'로 시작한다. 남편에게는 사랑과 더불어 전우애와 고마운 마음까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귀여운 동동이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다홍이도 마음으로는 분명 엄마를 깊이 사랑한다고 믿는다. 명색이 사춘기 여학생인데,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좀 심하지 않은가.


얼마 전에는 남편 회사 앞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도 계속 일을 했었고, 요 근래 5년간은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점심시간에 남편 회사 앞에 찾아가는 일은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결혼 16년 차가 되어 남편의 회사 앞에 찾아갔을 때, 회사 건물 쪽에서 걸어 나오는 남편이 보였다. 오랜만에 남편이 아니라 남자 친구 같다는 생각을 5초 정도 했었다. 유모차나 킥보드, 그리고 다홍이와 동동이가 없이 단출하게 우리 둘이 걸으면서 우리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골라 맛있는 밥을 먹고 사람이 꽤 많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우리들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다홍이와 동동이 관련 소재이긴 했다. 최대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도, 결국은 아이들이었다. 1시간 남짓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이따 집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우리는 선남선녀에서 아줌마 아저씨가 되고, 또 어머니, 아버지가 되었고, 얼마 시간이 흐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서 서로 성장하도록 응원해 주는 것은 참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일이다. 마치 사랑할 시간이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가족이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또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서는 사랑의 특징과 속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걸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읽어보면서 '와 나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한번 흉내라도 내보기로 했다.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아무리 어려운 곡이라 하더라도 악보와 지휘자만 있으면 완벽히 연주를 해낼 확률이 높은 것처럼, 나도 사랑을 연주할 악보를 가지고 다니려고 한다. 그들이 내내 가지고 다니며 닳도록 연습하는 악보처럼 나도 마음속에 품고 다니며, 실천하려고 한다. 사랑을 표현하기에 아직 많이 서툰 나라고 해도 성공할 확률은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밤은 나의 소중한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의 사랑을 어떻게 직진하여 표현할지,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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