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옆집 아주머니와, 좋은 아랫집 아저씨가 사는 곳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아들, 동동이는 생후 6개월, 딸, 다홍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생후 6개월 아기는 신생아를 벗어나 포동포동 살이 오르며 목소리도 제법 우렁차다. 우리 동동이는 잠든 지 두세 시간 만에 깨서 목청껏 울어대던 아이였다. 덕분에 나는 날마다 피곤했다. 서른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둘째 아이를 출산한 바람에 나의 체력은 더욱 바닥을 치곤 했다. 아이를 달래느라 밤새 깊은 잠을 못 자서 다크서클은 점점 짙어졌고, 설거지는 자주 밀렸고, 청소기도 돌리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도둑맞은 것처럼 정신없는 집에서 빽빽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진땀 흘리던 일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심신이 지쳐가던 어느 날,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똑똑 두드렸다. 빽빽 울고 있는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간신히 한 손으로 문을 열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이것 한번 드시겠냐며 내게 건넨 접시에는 멸치볶음과 배추 겉절이가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방금 만들어진 듯한 멸치볶음은 따뜻했고 겉절이는 싱싱해 보였다.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주방에서 한 젓가락을 집어 먹어 보았다. 맛있었다. 멸치볶음은 너무 짜지 않게 간이 잘 배어 있었고, 아삭한 배추가 맛있게 매웠다.' 아.... 오늘 저녁 반찬은 해결됐구나' 생각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접시를 깨끗하게 씻어 떡집에서 산 쑥절편과 가래떡을 감사하다는 쪽지와 함께 담아 드렸다.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며 '뭘 이런 걸 다... 아유.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하셨다.
이렇게 멸치볶음과 겉절이를 시작으로 옆집 아주머니는 시시때때로 우리 집에 무언가를 가져다주셨다. 어느 날은 독일식 햄 세트, 어느 날은 밭에서 직접 심고 기르셨다는 큼지막한 고구마 한 바구니, 또 어느 날은 동동이 머리만 한 동그란 애호박,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매콤 달콤한 양파 한 망이었다. 나 역시 귤, 사과, 옥수수, 떡, 과자세트, 초콜릿, 김 세트 등을 드렸다. 주고받는 쟁반 속에 싹트는 이웃의 정이었다.
어느 날 다홍이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마치고 장을 봐서 집에 도착했는데,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혹시 다홍이 초등학교 졸업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네, 지난주에 했어요.' 그랬더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시더니 하얀 봉투를 가져오셔서는 '따님 맛있는 거 사주세요.' 하시며 주셨다. 나는 갑작스러운 호의에 당황하며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곁에 서있던 다홍이가 '감사합니다!' 하며 넙죽 인사를 했다. 딸은 집에 들어와서 내 손에 들린 그 봉투를 어떻게 할 거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기에 '너 해라.'라며 쿨하게 건넸다. 봉투 안에는 무려 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뜻하지 않은 거금의 용돈을 받은 다홍이는 아주머니만 보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작년 여름이던가,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멀리 사시던 시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기 시작하셨다. 치매가 시작되셨는데, 점점 심해지셔서 돌보아 드리기 위해서 모시고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몇 번 할머니 드시라고 과일이나 사탕을 가져다 드린 적이 있다. 그날도 동동이랑 거실에서 놀고 있는데, 현관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누구를 부르는 듯했다. 몇 번 듣다가 문을 열어보았더니 옆집 할머니가 기어서 계단을 내려가시는 중이었다. 기력이 없으셔서 걷지도 못하고,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신 듯했다. 깜짝 놀란 나는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 그러세요?'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집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던 틈에 할머니께서 아들, 며느리를 찾아 나서신 것이다. 계단에 앉아계시는 할머니를 일단 달래고 일으켜 드렸다. 집안에 안전히 모셔다 드리고, 옆집 아주머니께 전화로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집 아주머니가 도착하셨다. 그날 저녁, 곱게 싼 김밥 네 줄을 건네주시면서 아까는 정말 미안했고 고마웠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요즘 자꾸 집 밖으로 나가셔서 다홍이 엄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거듭 인사를 하셨다. 그날 저녁, 옆집 아주머니가 주신 김밥에 컵라면을 온 가족이 나누어 먹으며 오랜만에 내가 한 착한 일에 대해 남편과 아이에게 자랑했다. 참으로 흐뭇하고 풍성한 저녁이었다.
옆집과 우리 집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애타게 아들을 찾는 목소리와 다섯 살 남자아이가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빽빽 우는 소리로 시끄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표현했으며 서로 괜찮다고 말했다. 오히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는 고충과 남자아이 키우는 고난을 위로하곤 했다.
요즘 층간 소음,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이 엄청나지 않은가. 이웃 간의 다툼으로 종종 살인사건이나 폭행 사건도 일어나는 참으로 삭막한 때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웬 행운으로 이렇게 좋은 이웃을 만났는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던 행운' 같은 멋진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의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 아이 뛰어다니는 소리, 어느 집 인테리어 공사로 들리는 드릴 소리와 타일 제거할 때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나와 나의 이웃은 그냥 조금 참는다. 다만 '저 집 애가 또 우나. 어디 아픈가? 애 엄마가 힘들겠네', '할머니가 자꾸 어디를 나가려고 하시니 아주머니 속 터지시겠음!, '그런데 저렇게 오래 공사하면 그 집 식구들은 동안은 어디에서 사시나?' 하며 대충 넘어가게 되었다. 이는 미리 오고 갔던 쟁반 위의 소박한 음식, 서로에 대한 안부와 소식 덕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는 결혼 후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그래서 많은 옆집, 앞집, 아랫집, 윗집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거의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이렇게 접시나 쟁반이 오고 가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도시를 옮겨 남편 직장 가까운 이곳으로 와서, 처음 만난 이웃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사 온 첫해부터 먼저 나에게 친절을 베푸셨다. 나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낯선 곳에 친척을 만난 기분이 들 정도로 그분이 친근하고 좋았다.
좋은 동네란 집값이 비싸고, 교통이 편리하고, 공원과 편의시설을 잘 사용할 수 있으며 교육시설이 잘 발달된 된 곳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처럼 정성스러운 음식이 담긴 쟁반과 접시가 오고 가며, 서로의 아이들의 이름도 알게 되며 반갑게 인사하는, 선한 이웃이 있는 곳이 정말 좋은 동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시 사람은 집값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