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토록 매력적인 책 제목이 또 있을까.

by 김하예라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나목'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고 나서 그다음으로 선택했던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그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책 제목 때문이었다. 살면서 '싱아'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았는데, '싱아'라고 발음할 때 기분이 좋아졌다. '싱'의 받침 '이응'과 '아'의 첫소리 '이응'을 발음하며 혀에 소리를 머금고 있으면 청량감 가득한 신맛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두어 번 따서 먹어보았던 신맛 나던 '토끼풀(클로버)'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유추도 해보았다.


'도대체 싱아는 무엇이고, 그렇게 많던 것을 또 누가 다 먹어버렸단 말인가?'


나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침을 꼴깍 삼켜가며 책장을 넘겼다. 책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 유년 시절을 보낸 1930년대 경기도 개풍군 박적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산천초목의 모습, 그곳 사람들의 생활 풍습의 묘사가 되어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도 실감 나게 써 놓으셨던지, 두 눈을 감으면 책 속의 글자들이 그림으로 되살아나 박적골의 개울물, 초가집, 기와집, 거리가 환하게 보이는듯했다. 그동안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그분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시선이나, 섬세한 관찰력, 그리고 유려한 필력은 그저 날 때부터 주어진 천부적 재능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유년기를 알고 보니 아름다운 자연에서 대가족과 함께 살며, 특히 할아버지에게서 더욱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득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작가는 유년 시절을 지나며 생활력과 교육열이 남달랐던, 그래서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신여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왔다. 책에는 194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야기, 스무 살이 되던 해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한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작가의 해석을 거쳐 자세하게 펼쳐졌다.


박완서 작가님이 펼쳐놓은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면서도 책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계속 가지고 있었다. '싱아'가 무엇인지 작가가 분명히 설명해 줄 것이라 믿으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90여 페이지쯤 되었을 때, 드디어 싱아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토록 맛깔난 묘사에 나는 싱아를 금방이라도 한입 베어 물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박완서, 2005.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


그렇다. 작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싱아'라는 흔한 풀에 담았던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각박한 세월을 살아가던 작가는 고향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던 새콤달콤한 속살의 싱아를 하염없이 찾아 헤매었건만, 끝내 찾을 수 없어 깊은 상실함과 허탈함을 느꼈다. '그 많던 싱아'는 그녀의 유년시절이자 고향이었던 것. 나고 자란 박적골이 사무치게 그립던 작가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져 내 가슴이 아려왔다. 마치 그녀의 고향을 잃은 아픔이 마치 내 아픔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잘 지은 책 제목과 이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인듯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제목의 책 역시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산은 어디를 말하는지, 북한산인지 백두산인지, 금강산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에서 '산'은 눈에 보이는 진짜 산이 아니라 작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너른 품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새로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또 그녀의 책을 찾아서 읽을 예정이다.


사실, 누구나 '내 삶을 책으로 만들면 열두 권은 나올 거야..'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삶을 열두 권의 소설과 에세이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원석처럼 귀한 인생의 기억들, 몸소 느낀 상처와 아름다운 추억들을 정성껏 갈고닦아, 글이라는 아름다운 줄에 꿰어 영롱한 진주 목걸이와 같은 책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던 박완서 작가님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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