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덩굴에서 피어난 조각

문득_화요일 오후 세 시의 오븐_250513

by beautiful wisdom

나는 만지면 안 되는 걸 만졌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구해지길 기다리며 잠만 자는 공주로 남고 싶지 않았어. 그 왕자가 영웅이라 해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구해줬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에 빠지는 건 싫었거든. 그리고, 내 드레스 색깔은—적어도—내가 고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나는 알려진 것과 달라.


물레가 위험하다면, 그게 어떻게 위험한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줬어야지. 그냥 나라에 있는 물레란 물레는 다 태워버렸다더라. 그래서 저주가 막혔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백성들만 힘들었대. 물레 없인 삶이 안 돌아가거든. 게다가 생각해 봐. 말레피센트가 저주를 걸 능력이 있다면, 물레 하나쯤은 얼마든지 마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겠어?


난 일이 이렇게 된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래서 숲속에서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도, 이건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프로라, 포나, 메리웨더가 내 유일한 가족인 줄 알고 살다가, 갑자기 왕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받아들이고 성으로 향했지.


그런데도 아무도 내게 대답해주지 않았어. 그 마녀는 누구인지, 저주는 어떤 건지, 왜 그런 저주를 내렸는지—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건지. 나는 그녀가 궁금했어. 왜 자기 자신을 괴물로 만들면서까지 그런 분노를 품게 되었는지.


사실, 나는 잠들어 있는 동안 내내 잠만 자고 있진 않았어.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계속 누워 있을 수가 없었거든. 깨어나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밖으로 나갔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안에 있고 싶지 않았어. 모른 채로 있는 것도 괴롭고 두려워. 차라리 그럴 바엔, 나가서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 덩굴은 가시로 가득했고, 왕자처럼 무기가 없던 나는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내야 했지. 얼마나 따갑고 쓰라리던지. 그 고통을 참고 견디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레피센트에게 질문을 건넸어. 당신은 누구인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유리 조각 하나가 떨어졌어. 무지갯빛으로 아롱아롱하는 그 조각에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움찔했어. 또 다른 저주일까 봐. 하지만 생각했지. 말레피센트가 만들어놓은 이 가시에도 찔리고 있는데 별일 없잖아. 빛을 들여다보니 풍경이 보였어. 나는 그 조각들 하나하나로, 그녀의 이야기를 보게 됐어.


어린 요정이었던 말레피센트. 보석 웅덩이에서 만났던 한 소년. 자신을 위해 끼고 있던 쇠반지를 빼주던 따뜻함. 그리고… 믿었던 그의 배신. 그래, 너희가 아는 바로 그 이야기. 내 아버지가 한 일이야. 그래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거지.


미안했어. 정말로 미안했어.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녀가 감춰버린 본모습을 찾아주고 싶었어. 말레피센트는 왕자의 칼에 찔려 죽지 않았어. 백성들을 안심시키려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야.


가까이 다가간 나는 내 아버지를 대신해 그녀에게 사과했어. 그녀의 고통을, 분노를, 사랑을… 그 모든 걸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어. 덩굴 속에서 발견한 유리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으자, 그것들은 하나의 거울로 변했어. 나는 그 거울을 괴물로 변한 그녀에게 건넸어.


그런 사람 때문에, 당신의 마음까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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